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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Nov 18. 2021

러닝 본능

운동 / 러닝 이야기

격하게 달리고 싶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리고 싶다!


도박에 빠져 있는 사람이 놀음을 못하면 손이 근질거리고

당구에 빠진 사람은 누워서 천정을 봐도 당구공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러닝에 빠진 사람은

경치 좋은 곳을 보면, '뛰기 좋은 곳이군'

선선하고 맑은 날씨에도, '뛰기 좋은 날씨군'

오로지 '뜀박질' 할 생각밖에 없다.


몇 년 전, 미서부 여행을 하며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게 되었을 때도

'저 사막을 뛰는 느낌은 어떨까?'

'한번 뛰어 보고 싶다.'라고 중얼거렸다가

"한번 뛰어 보지 그래? 내려줄게."라고 흔쾌히 대답하며

차를 세우려는 남편을 보며 멋쩍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한동안 하루에 두 번, 새벽이나 아침에도 달리고

저녁에 해지고 나서도 달리던 때가 있었다.

장대비가 내릴 때도 달려보고 싶어서

러닝용 방수 재킷을 구입하기도 했다.


비치로드를 달리기도 하고

햄스터도 아닌데, 400 미터 트랙을 쳇바퀴 돌 듯 50바퀴씩 돌고 돌며 달리기도 했다.

언덕을 뛰어오르며,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요즘, 거북이 녀석들의 온라인 수업 때문에

스트레스 게이지가 거의 max이다.

저녁때, 녀석들을 데리고 gym에 가서 가볍게 몸을 풀고 오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끓어오르는 러닝 본능을 달래기에 역부족이다.


이제, 헬스장 트레드밀 위에서 마스크까지 쓰고 종종 거리며 뛰는 건

싱겁고 재미없다 이 말이다.


녀석들의 수업 도중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강한 충동.

'나 지금 달리러 나가고 싶다고!'

아이언맨이 아니다. 한밤중에 트랙을 달리는 아이언 우먼이다.


이 나이의 아줌마들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어할

명품백이나 보석류 같은 건 내게

'아웃 오브 안중'이다.


신고 달리면 마치 내가 '킵초게'처럼

세계기록 경신이라도 할 것만 같은

미끈하고 근사하게 빠진 '러닝화'

입고 달리면 좀 뛰는 아줌마처럼 폼이 날 것 같은

'멋진 러닝복'

이런 것들이 내 관심사이다.


그중 가장 큰 나의 '사치'는 러닝화 구입이다.

일주일에 평균 40~50킬로미터 정도를 달리는 나는

약 4개월에 한 번씩, 대략 1년에 서너 켤레 정도의 러닝화를 구입한다.


그 이상이 되면 러닝화의 쿠션도 죽고

기능이나 착용감도 예전만 못하는 등 수명이 다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세 켤레의 러닝화가 나와 함께 했다.

러닝화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그 간은

마치 장거리 연애를 하며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과 비슷하게

설레고 조바심이 난다.


내년엔 또 어떤 녀석들과 함께 사이판 곳곳을 누비고 다닐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흥분된다.


미세먼지나 겨울이 없는 사이판의 환경은

러닝에 홀딱 빠진 아줌마에게

일 년 내내 야외에서 실컷 달리기에 완벽한 조건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야간 러닝이라도 하러 밖에 나가야겠다.


꼭 그래야겠다!

나의 최애 러닝화! 이 녀석 없이 장거리는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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