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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Nov 22. 2021

가지치기

일상 이야기

"싹둑싹둑 철컹철컹"


오늘도 정원 관리사 아저씨의 손길이 아침 일찍부터 바쁘다.

지난주에 가지치기를 하신 것 같은데

어느새 이리저리 제멋대로 삐죽 튀어나온

잔 가지들을 쳐내는 가위질 소리가 분주하게 들린다.


우리 빌라 단지 내의 정원에는

갖가지 나무와 꽃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덕분에 늘 공원에 소풍 나온듯한 기분이다.


수박씨 하나만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놔도

얼마 후에는 아기 머리통 만한 수박으로 자랄 만큼

모든 식물들의 성장에 최적인 사이판의 기후 조건 덕분에

나무의 가지치기나 잔디 깎는 일을

주말에 소소하게 부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을 정도이다.


그래서 우리 정원 관리사 아저씨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하루 종일 바쁘시다.




'가만있어보자... 카카오톡 친구들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의외로 새로운 사람 만나는 일을 주저하고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어느 순간 피로감을 느끼는 나는

'소수정예'를 선호한다.


'발 넓은 인맥'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자

성공적인 사회생활의 척도가 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의 대인관계나 사회생활 점수는 낙제점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나는

그릇의 용량이 다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 경우는, 타고난 깜냥보다 넘치는 상황이 되면

내면의 그릇에 실금이 가기 시작하고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가지치기 시기를 한참 놓친 정원수처럼

어수선하고 심란하게 이리저리 튀어나온 잔 가지들로 인해

스스로 스트레스받고 버거워하는 것이다.


일 년 가야 연락 한 번 주고받을 일 없는 사람

얼떨결에 맺은 카카오톡 친구들

기억도 안나는 이유들로 서먹해진 사람들

본의 아니게 주고받은 의미 없는 번호들


이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 용량을 초과하게 되면

내게는 모조리 부담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휴대폰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고

왠지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끼면

드디어 가지치기를 할 때가 된 것이다.


카카오톡 친구 리스트가 나보다 더 소수정예인 사람이 있을까.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 이상의

친구 리스트가 저장돼 있는 주변 사람들의 휴대폰은

내게는 박물관의 오래된 전시물처럼 멀고 낯설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한 번씩 인간관계의 가지치기를 해 주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볍고 홀가분하다.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일수록

 조용하게 오랫동안 덥혀진 인연이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뜨겁게 활활 타오르지도

환하게 주변을 밝히지도 못하지만

무쇠솥에서 몇 날 며칠을 고아낸 곰국처럼

작지만 오랫동안 아궁이에 남아있는 불씨처럼

그렇게 뭉근하고 소박한 인연이 편하고 좋다.


'가지치기'란
충해를 예방하거나 조경수의 건전한 발육과 아름다운 수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주는 행위를 말한다.

'가지치기'로 한결 가벼워진 휴대폰을 보며

소심한 미소를 혼자 지어본다.

마음이 편안하고 머릿속이 조용하다.


가지런히 정리된 정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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