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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Nov 22. 2021

거울 속에서

일상 이야기

월요일 오전이다.

거북이 녀석들의 온라인 수업이 어김없이 다시 시작됐다.

다행히 이번 주엔 Thanksgiving break 가 있어서

화요일까지만 수업을 하면 된단다. 할렐루야!


각자 다른 방에서 수업을 듣는 녀석들 때문에

이 방 저 방을 들락거리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방 입구에 있는 전신 거울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됐다.


거울을 보자마자 흠칫 놀라며 한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아니, 저건...'

거울 속엔 돋보기를 뒤집어쓴, 영락없는 친정 엄마의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하이고~누가 모녀간 아니랄까 봐 징허게도 닮았소잉~"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단잠을 깨운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를 깨운 건

신기하다는 듯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고속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엄마랑 내가 모녀 사이냐는 질문은

애당초 할 필요가 없다는 듯

사람들은 항상 연하게 우리 모녀를 대했다.


삼 남매 중, 외가 쪽 유전자를 제일 많이 물려받은 나는

외갓집에서도 인정하실 만큼

엄마와 외모가 닮았다.


자주 왕래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엄마랑 외갓집에 들릴 때마다 

엄마랑 외할머니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2남 3녀 중 장녀셨고

그중에 외할머니와 가장 외모가 많이 닮은 자식이셨다.

나머지 이모나 외삼촌들은 마치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듯

엄마와는 외모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유전자의 힘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다.

체질이나 외모는 물론이고

사소한 버릇이나 식성, 취향까지 닮을 수 있다니 말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 외할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엄마 사진 속에서 내 얼굴이 보이네."라고

쓸쓸하게 혼잣말을 하시던 오래전 엄마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오늘에서야 나도 그때 엄마의 쓸쓸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애들이, 엄마를 하나도 안 닮고 죄다 아빠를 닮았네."

"아빠 유전자가 더 센가 보네."

사람들이 우리 두 거북이 아가씨들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특히나 큰 녀석은

설령, 전쟁통에 생이별을 하게 돼서

갓난아기 때 헤어졌다 해도

단번에 아빠와 부녀지간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빠를 참 많이 닮았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큰 녀석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아빠 얼굴 닮았다"라고 하면 정색을 하고 부정한다.

자기는 절대 아빠를 닮지 않았고(않고 싶고)

엄마를 닮았단다.


'이 녀석아, 부정할걸 부정해라.'

건 뭐 어지간해야 그냥 넘어가지.

네가 부정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란다.


고등학생인 두 녀석들이

앞으로 얼마나 외모가 달라지고 변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엄마와 나 사이처럼

두 거북이들 중에 그렇게 외모가 나와  많이 닮을 녀석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이로써 외할머니로부터 내려온

모계 유전의 역사는 끊어지게 되는 것인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거북이 녀석들이 거울 속에서 예상치 않게

엄마인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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