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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Dec 01. 2021

거시기

일상 이야기

사진출처 WORD RAW


"불경기여서 그런지 아직 회사 상황이 좀 거시기하더라고."

"거 누구냐, 전주가 집이라던 거시기는 요즘 통 안 보인다."

"내가 거시기할 때 너도 같이 있었잖아."

"거시기, 길 좀 물어봅시다."

"철수야, 그 옆에 거시기 좀 갖고 와 봐."

"요즘에 왠지 어렸을 때 먹었던 거시기가 먹고 싶다."


위의 여섯 가지 '거시기'의 의미가 각각 다르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마도 고향이 전라도 쪽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그곳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친한 친구나 지인이 전라도 출신일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었지만,

내 기억으로는 여섯 살에서 일곱 살 사이에 서울을 떠나서

제주도, 부산, 여수 등을 돌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덕분에 전학도 참 많이 다녔었고, 좀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지역의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야 했다.


의외로 뭔가 관찰하고 흉내 내는 걸 즐겼던 나는

각 지방의 특색 있는 사투리에 금방 적응하고 빠르게 익혀서

종종 부모님 앞에서 친구들 말투나 옆집 아저씨 사투리를 흉내 내곤 했었는데

배를 잡고 웃으시는 아빠 엄마의 반응에 힘입어

더욱더 주의 깊게 관찰하곤 했다.




다양한 사투리들 중, 어린 내게 가장 흥미롭고 인상 깊었던 것은

전라남도 '여수'에 살 때 숱하게 들었던 '거시기'라는 표현이었다.


아침 등굣길에 종종 목격하게 되었던 동네 아저씨들의 대화는

학교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서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할 만큼

내겐 중독성 있고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박 씨: "아따, 김 씨! 그 뭣이냐, 저 윗동네 사는 거시기 있잖소."

김 씨: "아~그 용팔이? 갸가 왜?"

박 씨: "그놈이 간밤에 거시기 해부렀다네!'

김 씨: "뭣이여? 아니 그놈의 새끼가 어쩔라고 야반도주를 하고 지랄이여!"


정말 어메이징 했다.

내가 들은 건 '거시기'라는 단어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한 시간도 넘게 '거시기'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분명히 앞뒤 문맥이나 정황상, 그 수많은 '거시기'가 각각의 의미가 따로 있을 것 같긴 한데

말끝마다 '거시기'라는 표현을 남발하니까 당최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얼른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은 한 번도 대화가 중단되거나 꼬이지 않고

저토록 서로 잘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놀랍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거시기'는 사투리가 아니었다!


분명히 이 표현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곳은 전라도였는데

그래서 당연히 전라도 사투리라고 철썩 같이 믿어왔었는데

'거시기'는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라고 한다.


간혹 내 경우처럼, '거시기'를 전라도 사투리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을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둬야겠다.

표준어 규정 제2장 제1절 제4항에서도

'거시기'를 표준어로 규정하고 있고

이와 비슷한 말로 '머시기'가 있는데 바로 이 '머시기'가 사투리라는 사실이다.


그렇기는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시기'라는 표현은

자연스럽게 전라도 지역을 떠올리게 할 만큼

그쪽 주민들이 특별히 애용하는 표현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거시기'의 쓰임새는 이미 여러 가지 예문에서 보았듯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거시기'라는 표현은 의외로 숨은 매력이 있는 묘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좀 나쁘네요."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좀 거시기하네요."


의외로 '거시기'라는 말 하나로

자신의 불쾌함이나 언짢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슬쩍 애매하게 돌려서 이야기하는 느낌을 준다.


"네가 울고 있으니까 내 맘이 아프다. "

"네가 울고 있으니까 내 맘이 거시기하다."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듯하면서도

뭔가 구수하고 푸근한 맛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적어도 내게는 '거시기'라는 말이 거북하지 않고 정감이 가는 표현이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오히려 어두운 억들만 떠오르던 그곳에서의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희석시켜 주는 '위로'같은 단어이다.

그래서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남도의 바다 내음이 듬뿍 담긴 얼큰한 해물탕 한 그릇을 먹어치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요즘 이미지 검색창에서 '거시기'를 찾으면

애들 볼까 무서운 민망한 사진들이 수두룩하게 튀어나와서 화들짝 놀라곤 한다.


실제로 그 지역에서 수년간 살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거시기'는 그곳 사람들에게 그런 퇴폐적이거나

성적인 표현을 할 때 주로 쓰이던 단어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왠지 '거시기'의 특별한 의미가 퇴색한 것 같아서

기분이 거시기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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