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라토너 거북 맘 Dec 05. 2021

나를 사랑하기

일상 이야기

"뭐하셔?  다리는 좀 어떠셔. 점심은 뭐 좀 드셨어?"

"아니 핸드폰은 왜 맨날 안 받으시는데?"


뭐 그리 하는 일이 많고 바쁘다고

요즘 한국에 계신 친정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는 횟수가 자꾸 뜸해진다.


우리 1945년생 광복둥이 김여사는 큰 딸의 잔소리에 가장 약하시다.

가끔, 한 고집하시는 김여사 때문에 두 손 두 발 든 동생이

전화로 SOS를 요청하며 언니가 좀 어떻게 해보라고 신호를 보내면

김여사에게 또 나의 폭풍 잔소리와 세뇌 교육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어쩔 땐 거의 한 시간 동안, 김여사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쏟아부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뭐 전혀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몇 달 전에도 전화로 한참 떠들었던 내용인데 그새 약발이 떨어진 것 같으니

다시 한번 반복 재생하는 것뿐이다.


김여사의 시대를 살았던 어머니들은

대부분 각자 나름대로의 크고 작은 상처와 한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하는 말씀들이

"내가 살아온 세월을 책으로 쓰면 열 권은 족히 나오고도 남는다."는 얘기다.

참으로 신기하다.


왕년에 한 미모 하셨던 우리 김여사에게도 참 사연들이 많다.

그 사연들은 아주 오래되고 해묵은 것들이라

어떤 것은 내 나이보다 훨씬 긴 역사를 자랑하기도 한다.

개중에는 나의 성장 과정과 함께 자라난 사연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김여사에게만 상처가 된 것이 아니라 내게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우리 김여사에게도 좋지 않은 습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마음속 깊은 곳에 들어앉은 과거의 어두운 기억들을 자꾸 되새김질하시는 것이다.

쓰디쓰고 아팠던 옛날 기억들이나 사연들과 다시 마주하며

새삼 분노하고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시기도 한다.


그런 김여사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해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는 있다.

오래된 상처나 흉터가 희미해질 수는 있어도 아예 없어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때로는 희미해진 상처를 굳이 다시 후벼 파서 생채기를 내가며 힘들어하는 김여사를 보면서

자식으로서 안타깝고 답답할 때도 많다.

'과거에는 힘드셨지만, 그래도 지금은 웬만하신데... 왜 엄마는 과거와 쿨하게 이별하지 못하시는 걸까.'

'지금 그때 이야기를 곱씹으며 힘들어하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왜 스스로를 자꾸 힘들게 하실까.'


가끔씩 엄마에게,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실 거냐고 잔소리를 퍼붓고 화를 낼 때도 있지만

엄마의 오래된 상처들은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평생 아물지 못하고 끝까지 엄마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슬프고 안타깝지만, 그것이 엄마 인생의 한 부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모녀 사이가 아닌,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의 엄마와 한 가정의 주부가 되고서야

엄마의 인내와 끈기가 얼마나 대단하고 어려운 것이었는지 이해하게 됐다.

내일모레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이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것을 이제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는데

평생 늙지 않을 것 같던 우리 김여사의 허리가 굽고

어느새 머리에는 허옇게 서리가 내려앉았다.



"엄마, 주변을 한번 둘러봐봐요.'

"솔직히 팔자 좋은 노인네들도 많지만, 아직도 힘들고 비참한 양반들이 얼마나 많은데."

"물론, 엄마가 많이 힘들었던 거 내가 잘 알지만, 이제 그만 그런 기억들은 놔줘 버려요."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요, 왜 그런데 공연히 에너지 낭비를 하셔."

"우리 지금 이 상황에 감사하고 만족합시다. 좋은 거 잡숫고 좋은 생각 하시고 억지로라도 자꾸 사람들 만나고 부딪치면서 엄마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시라고요."


김여사에게 정기적으로 하는 잔소리의 일부이다.


새로울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내용인데도

김여사는 나의 폭풍 잔소리를 전화기를 통해 한참 듣고 나면

"그만해라, 가스나야! 듣기 싫어 죽겠네."라고 하시면서도

처음보다 한결 편해진 음성과 함께

뭔가 새로운 의지가 마음속에 생기신 듯 느껴진다.


이번엔 약발이 좀 오래가야 할 텐데 말이다.


결혼 전, 김여사와 함께 살 때는

퇴근하는 길에 포장한 회와 함께 매실주를 사들고 집에 들어가서

오붓하게 한 잔 하기도 했다.

휴일에는 같이 연극이나 콘서트 관람을 하기도 했다.

종종 온천 여행도 가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니, 남자 친구가 아니라 휴일에 엄마랑 시간을 보냈다고?"

직장에서 나는 '마마걸'로 통했었다.

마땅한 짝이 없으면 결혼 안 하고 평생 김여사랑 여행이나 다니며 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해외에 산다는 이유로 엄마 얼굴을 2년째 못 보고 있다.

거북이들과 하루 종일 씨름하면서 정신없이 사느라

한 달에 한 번 전화 통화도 못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김여사는 알 것이다.

당신의 큰 딸이 얼마나 김여사를 그리워하고 걱정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못난 큰 딸이 곁에 없어도

김여사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철철이 보약도 드시고 몸에 좋은 거 악착같이 챙겨 드시길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아주 잘 알고 계실 것이다.


다행히, 나 대신 늘 김여사를 살뜰히 챙기고 보살피는 동생 내외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종종 동생이 김여사와 함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올 때면

나도 그 자리에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오늘따라 김여사와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싶어지는 밤이다.

언젠가는 김여사가 더 이상 오랜 상처들로 인해 신세 한탄하며 한숨짓지 않고

여전히 고운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만하면 내 인생도 나쁘지 않다."라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동생과 함께 콘서트도 즐기시고 맛집 탐방도 하시는 김여사
매거진의 이전글 거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