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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Jan 09. 2022

Duathlon(듀애슬론)을 아시나요?

운동/러닝 이야기


'한 시간만이라도 잠을 더 자고 나왔더라면...'

'도대체 난 왜 매번, 크던 작던 어떤 일을 앞두고는 잠을 푹 자지 못할까.'



어젯밤, 나름대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면 시간을 채 두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서

일어나야 할 시간까지 밤새 괴롭게 뒤척이기만 하다가

결국 어질어질 몽롱한 상태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기어이 토요일 새벽길을 나선다.


토요일인 오늘도 러닝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고

게다가 오늘의 행사는 나와 함께 팀을 이뤄 경기를 치러야 하는 파트너가 있는지라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이벤트에 참가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오늘의 행사는 바로 Duathlon이다.

사실, 철인 3종 경기라고도 부르는 Triathlon은 많이 들어보기도 해서 익숙했지만

Duathlon은 내겐 좀 생소했다.


Triathlon이 수영, 러닝, 사이클, 이 세 가지 종목이 결합된 경기라면

Duathlon은 거기서 수영만 제외한 러닝과 사이클이 접목된 것이다.

원래는 선수 한 명이 혼자서 치르는 경기이지만

이번 행사는 러너와 바이커 두 명이 한 팀을 이루는 것도 허용됐다.


몇몇 베테랑 선수들은 솔로로 출전하기도 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선수들은 두 명씩 팀을 만들어서 참가했다.

기록 경신이나 다른 팀과의 경쟁을 위한 목적보다는

즐거운 축제나 운동회처럼 함께 웃고 즐기자는 취지가 강한 행사인 것이다.


일 년 내내, 운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인 사이판의 기후 덕분에

이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스포츠 마니아들이 많다.


러닝의 매력에 빠져서 러닝 동호회에 가입한 후

각종 마라톤이나 달리기 행사에 열심히 참가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고

여자, 성인 남자, 유소년 축구클럽 등

다양한 축구팀들의 활동도 매우 활발하며

산악자전거나 사이클 동호회도 제법 규모가 커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사이클을 타고 섬 일주를 하는

바이커들을 심심치 않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러닝 동호회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의 부탁으로 참가하게 된 이번 행사는

내게 새로운 경험과 다양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행사장에 도착하면 내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초면인 데다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파트너와 팀을 이뤄서

나는 러닝 파트 담당, 파트너는 사이클로 경주를 하게 될 이번 경기가

낯설지만 뭔가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벼운 긴장감과 설렘, 부푼 기대감을 안은채 새벽어둠을 뚫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머리는 멍하고 몸은 무거웠지만 말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 신호가

나중에 나를 아찔하고 식겁하게 만들게 될 줄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직 주위는 칠흑같이 어둡고 앞이 보이질 않는다.

지구 상에서 가장 깊은 해구라는 마리아나 해구가 위치한

사이판의 여러 관광명소들 중 하나인 만세절벽 근처가 오늘의 행사 장소이다.

바다가 바로 인접한 곳이라 그런지 바람이 제법 거세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군이

이 절벽에서 "반자이"를 외치며 뛰어내려 집단 자살했다고 해서

Banzai cliff 라도고 부른다.

'그러게, 결국엔 그렇게 될 것을 왜 그리 온갖 패악을 다 부렸니. 꼭 그랬어야만 했던 거니' 

만세절벽을 배경으로 한 컷


이른 시간인데도 하나둘씩 사이클을 실은 차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서로서로 반갑게 인사도 나누며

워밍업을 하면서 몸을 푸느라 행사장이 북적거린다.

나도 러닝 동호회의 친구로부터 내 파트너를 소개받았다.

동그란 얼굴에 아담하고 통통한 체구, 귀여운 인상의 Rowena라는 필리핀 친구였다.


Run Saipan 러닝 동호회 친구들도 그렇고, 오늘 만난 내 파트너도...

어찌 그리 다들 하나같이 아담 사이즈이신지...

덕분에 같이 기념 촬영이라도 하면 거인족과 호빗 족 마냥

높낮이의 차이가 제법 커서 내가 엄청 장신인 것처럼 보인다.

겨우 167센티인 내 키가 마치 175센티는 족히 보이는 효과가 나타나니 말이다.


초면이지만 왠지 친근한 분위기의 파트너 Rowena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경기 시작 전 기념 촬영도 하면서

부담 갖지 말고 오늘의 이벤트를 신나고 재밌게 즐겨보자고 얘기했다.

재밌게 즐겨보자고!

경기 진행 순서는

먼저 러너가 5킬로를 달린 후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던 바이커가 이어서 20킬로 경주를 위해 출발하고

바이커가 경주를 마치고 돌아오면

마지막으로 러너가 5킬로 러닝으로 경기를 마무리하게 되는 방식이다.


Duathlon 경기의 러닝이나 사이클링의 거리는 대회마다 차이가 있어서

어떤 경우는 첫 번째 러닝 10킬로, 사이클 40킬로, 마무리 러닝 5킬로로 이루어지기도 하는 등

다양한 거리와 진행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경기에 솔로로 출전해서 스타트 러닝을 하고 돌아와

사이클용 신발로 바꿔 신고 바이크를 타고 경주를 한 후

다시 러닝화로 갈아 신고 마무리 러닝까지 혼자서 해내는 선수들을 보며

실로 존경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대단한 체력과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드디어 첫 번째 러닝을 위해 러너들이 출발선 앞에 모였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른 아침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 전까지, 계속 제자리 뛰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면서 미리 몸을 풀어놨기에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힘껏 속도를 내서 달렸던 것이 문제였을까.


선두 그룹에 끼어서 달리기 시작한 지 채 백 미터도 못돼서

갑자기 온몸에 급격하게 힘이 빠지고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머릿속이 하얘지고 식은땀이 나는 저혈압 증상이 찾아왔다.


이제껏 나름대로 다양한 거리를 뛰어도 보고

이런저런 경기에도 참가해 봤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생전 처음 겪는 거라

순간, 너무도 당황스럽고 아찔해서 더럭 겁이 나고 무서워졌다.


'어? 나 갑자기 왜 이러지? 이제 막 경기를 시작했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잠깐 주저앉아서 쉬어볼까?'


만약, 러닝 경험이 짧고 훈련이 부족해서

그 순간에 재빨리 호흡이나 속도 조절을 적절하게 하지 못했거나

스스로 컨디션을 조절하는 나만의 방법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무슨 사달이 나도 났을 것이다.

또한, 잠깐 쉰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기라도 했다면 아마 다시 일어나기 힘들었거나

그대로 퍼져서 바닥에 드러누워버렸을 가능성이 백 프로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많이 당황스러웠고 겁도 났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호흡을 정리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속도를 서서히 줄이면서 몸을 살살 달래 가며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당장 그 자리에 멈춰 서거나 걷지는 않았다.

오히려 갑작스럽게 운동 강도를 낮추거나 움직임을 멈추면

컨디션을 조절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상태로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컨디션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고

아까처럼 위험한 증상이나 상황은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러닝은, 대회 당일의 몸 상태나 컨디션에 따라

속도나 호흡조절, 체력 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뼈저리게 깨닫고 반성하게 된 계기가 됐다.


지나치고 무리한 욕심에

제대로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하지 못한 채 달리다가는

자칫, 뛰다가 생명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는

무섭고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게 된 경험이기도 했다.


처음보다 속도를 많이 낮춘 상태로 무사히 5킬로를 완주하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파트너가 사이클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출발했다.


'아, 드디어 숨 좀 돌리고 쉴 수 있겠구나.'


파트너가 사이클링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하며 안정을 찾고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5킬로 러닝을

처음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무사히 마치며

다행히 나의 첫 Duathlon 경기를 큰 탈없이 끝낼 수 있었다.


참가 선수들에 대한 시상과 메달 수여식이 끝나고

다 함께 대회 티셔츠를 입고 기념 촬영을 마친 후

나의 파트너 Rowena와 진한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다음번 경기 때도 함께 팀을 만들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오늘의 경험은

아마 당분간 러닝 경기 때마다 트라우마처럼 나를 긴장하게 만들 것 같지만

그만큼 앞으로 조심 또 조심하고

내 몸 안에서 보내는 신호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는 계기가 될 거라고 믿는다.


나의 첫 Duathlon 경험.

경기 초반의 아찔했던 순간만 제외하면

너무도 즐겁고 유쾌했던 행사였다.

다음번 대회에도 참가 확정이다.

그때는 대회 전날의 충분한 수면과 함께

지금보다 좀 더 강한 기초 체력을 갖춘 상태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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