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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Mar 17. 2022

나는 싸움닭?

육아 이야기

"웬 차들이 이렇게 도로 양옆으로 한 가득이지?"

"뭔 일 있나?"


한가롭고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

특별히 갈데없고 볼 것 없는 이 작은 섬에서

우리 가족이 종종 즐기는 일요일의 취미 생활은

바로 드라이브를 하며 섬 한 바퀴를 일주하는 것이다.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테이크 아웃한 커피나 음료, 혹은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을 즐기며

시원하고 푸른 바다를 감상하면서 드라이브를 하는 재미가 제법 괜찮다.


그러다가, 주차장도 아닌 곳에 길 양옆으로 잔뜩 세워져 있는 차들을 보고

궁금해하는 내게 남편이 정답을 알려준다.

"또 닭싸움이 열리나 보네."

남편은 얼떨결에 두어 번 정도

필리핀 직원들의 초대로 마지못해 구경한 적이 있다는...

이곳 사이판에서 필리핀 혹은 원주민 남자들의 인기 취미 생활중 하나인

cockfighting 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닭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유혈이 낭자할 것이고

제법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속속 연출될 것이며

그런 광경들을 즐기면서 돈을 걸고 내기를 하며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피 비린내와 함께 싸움장의 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할 것이 분명하다.


어지간한 일에는 크게 놀라거나 겁을 먹지 않고

어릴 때부터 제법 담력이 센 편인 나였지만

희한하게도 비위가 매우 약한 편이라

피를 보거나 잔인한 장면들을 접하면

소위 말하는 '멘붕'이 와버리는 스타일이다.


덕분에, 주삿바늘이 내 살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보기 힘들어하고

두 거북이 녀석들 유치가 흔들려서 손으로 뽑아줘야 했을 때도

무척이나 괴로웠었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면 나는, 무척 마음이 여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거북 맘인 것이다.




남편에게 다시 한번 cockfighting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니,

내 예상만큼 그렇게 유혈이 낭자하고 잔인하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닭싸움 자체도 워낙에 속전속결로 빨리 끝날뿐 아니라

눈뜨고 보기 힘든 장면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형태의 싸움은 짐승이 하든 사람이 하든 참 거부감 들고 싫다.

복싱이나 프로 레슬링을 혐오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두 거북이들의 엄마로 산지도 어언 10여 년이 지나고 있다.

큰 녀석이 다섯 살, 작은놈이 네 살 무렵, 거북이 판정을 받은 이후로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지나 고등학생이 된 현재까지...

정말 다양하고 구구절절한 사연들과 사건 사고들이 늘 함께 했었다.


한국도 아닌 해외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느리고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두 녀석의 학교 생활을 챙긴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세월이었다.

지금까지도 거북 맘으로서 나의 처절한 발버둥과 전투는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 녀석들이 대학에 가고 졸업을 할 때까지

그리고 장차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아직도 수많은 과정들과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우리 마누라가 이제 완전히 싸움닭이 다 됐네."


전투적인 눈빛으로 내일 있을 학교 미팅을 벼르고 준비하면서

관련 자료와 서류들을 훑어보며 각오를 다지고 있는 내게 남편이 웃으며 던지는 말이다.


교육과정이나 커리큘럼 등은 미국 본토의 규정과 정책을 따라가지만

선생님 개개인의 자질이나 퀄리티는 본토의 그것보다는 확실히 떨어지는,

이곳 공립학교의 교사들과 학교장들을 상대해 오면서

나는 의도치 않게 점점 더 강하고 전투적인 싸움닭이 되어갔다.


단 한 번도 학교나 교사들을

내가 대적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두 거북이들의 엄마가 된 후,

그리고 녀석들이 이 작은 섬의 공립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상대나 상황에 따라서, 때로는 강하게 맞서고 부딪치며

싸워야 할 필요도 있다는 걸 배우게 된 지난 10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학교이고 선생님들인데... 너무 오버하거나 잘못 생각한 거 아니야?"


그렇다.

아무려면 학교인데...


사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초반에는 다소 거북하고 불편해했더라도

결국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했고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많다.


내 아이들이 거북이들이 아니었다면 그럭저럭 무난하고 편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거북이들에게는 좀 더 차원이 다른 관심과 도움이 필요했기에

그것을 어느 정도라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앞장서서 소리를 내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요구하고 쫓아다니지 않으면

아무도 내 아이들에게 신경 쓰거나 특별히 관심 가져 주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는

결국 내가 바뀌고 달라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똘똘한 아이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은 두 녀석들...

이곳 원주민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존재감 없는 동양인 우리 삼모녀는

이곳 공립학교에서는 그저 극소수의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과 학부모일 뿐이었다.


그런 우리를 좀 쳐다봐 달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신경 좀 써 달라고

우리 아이들도 엄연히 녀석들의 수준에 맞는 교육과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당신들이 똑바로 하지 않으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그렇게 10년 동안

때로는 부탁하고 사정하면서

때로는 싸우고 항의하고 부딪쳐가며

이만큼 왔다. 여기까지 말이다.




"I think you may not understand me, but since my daughters entered the elementary school,

I decided to become a squeaky wheel like an old saying that the squeaky wheel gets the oil."

"Otherwise, nobody will help my daughters and me."


'삐걱거리는 바퀴에 기름칠한다.'

우리나라 속담, '우는 아이 젖 준다'의 미국식 버전이다.


시큰둥하거나 못마땅한 표정, 아니면 의례 사무적인 얼굴로

미팅룸에 들어서는 나를 쳐다보며 앉아있는 교사들을 비롯한 보조교사, 학교장...

'왜 저 엄마는 항상 저리 유난을 떨고 난리일까.'

'적당히 해도 어차피 쟤들은 졸업시켜 줄 텐데... 참 귀찮게 하고 시끄럽게 만드네.'

이런 그들의 생각이 생생하게 음성 지원되는 듯한 분위기의 미팅 현장에서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미팅 시작 전, 카랑카랑하게 내뱉은 말이었다.


그렇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그래도 아주 중증이거나 심각한 상태가 아닌 녀석들이라

거의 백 프로에 가깝게 일반 클래스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여러 과목들을 수강하면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테스트를 보거나

온라인으로 미국 본토에 있는 스피치 테라피스트와의 언어 수업을 할 때를 제외하면

SPED Room(The special education resource room)이라고 불리는 특수반에 있지 않고

대부분의 학교생활을 일반 교실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녀석들이 완벽하게 스스로 모든 수업들을 따라가느냐 하면

그건 또 얘기가 달라진다.


때로는 일대일로 보조교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도 있고

담당 과목 선생님의 배려나 같은 반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특수교육 시스템이나 제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미국의 특수교육에서 학생, a student with special needs에게 필수적인 것이

바로 IEP (individual education plan)이다.


자폐나 발달장애, 신체장애, ADHD 판정을 받은 모든 학생들은

각자의 IEP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매년 학부모와 학교의 모든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통해

아이들의 발달 상황이나  변화에 따라 다시 수정, 보완된다.


기본적인 틀이나 세부사항, 내용, 제도 등은 제법 구체적이고 그럴 듯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혹은 학부모가 체감하는 현실은

십여 장이 넘는 IEP 서류들과는 다를 때가 많다.



아이들이 일반 교실에서 그냥 방치되지 않도록,

교실 구석 뒷자리에 멍하니 앉아있다 오는 게 아니라

뭐라도 하나 더 배울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도록,

좀 더 적극적이고 꾸준하며 체계적인 스케줄이나 학교의 도움을 원하는 내 바람과는 달리

인력이 충분치 않다거나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로

들쭉날쭉한 케어와 열대지방 섬 특유의 무사안일하고 태평한,

적당히 Everything is okay 마인드를 가진 그들에게

사사건건 확인하고 연락하며 이것저것 요구하는 나는

정말 유별나고 피곤한 학부모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quality VS. Equity

평등과 공정?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전투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두 거북이 녀석들을 위해서임은 너무나 당연한 이유이고...

녀석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해

평등이 아닌, 내 새끼들의 공정한 학교생활을 위해서 이기도 하다.



이미 너무도 유명한 이 그림은

평등과 공평, 공정 등을 논할 때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이다.


우선, 엄마인 내가 뭘 알아야 거북이 녀석들을 도울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앞에 나서서 싸우고 따질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심정으로

40이 넘은 나이에 현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특수 교육학 분야의 과목을 수강할 때

무지막지하게 두껍고 깨알 같은 영문이 가득한 교과서에서 이 그림을 처음 접하게 됐다.


그렇다.

내가 학교에, 교사들에게 강조하고 원하는 것은

'평등'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조금 어렵고 복잡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너무도 기본적이고 당연한 요구사항이다.


너희 아이들에게도 보통 아이들과 똑같이

평등하게 모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냐고

당신 아이들은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충분히 받고 있으며

아무것도 문제 될 부분이 없다는 게 학교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나의 주장은


이것은 평등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건 너무도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므로

그걸로 당신들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내 아이들이 학교에서 정말 제대로 된 배움의 권리를 누리려면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차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수많은 숙제, 어려운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당신들은 이걸 정말 우리 애들이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부분의 모든 과제들은 집에서 우리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하거나

혹은 백 프로 아빠 엄마 작품인 경우가 태반이다.

당신들이 하는 일은 도대체 무언가?


특수반 교사들이라면, 그리고 학교장이라면

당신들이 진정한 교육자라면

과목 선생님들과 협의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개별 과제를 내준다던가

아니면 일정 부분, 당신들이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


다른 아이들과 능력치가 다른 학생들에게

똑같은 시험 문제와 과제를 내주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공평한 것인가?

이건 학생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것이다.


 거북 맘의 10년 내공은 결국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 애가 좀 모자라서 이건 힘들어요.... 못해요."

주눅 들고 눈치 보며 뭔가 큰 잘못이라도 한 듯 행동하지 않고


"우리 애가 이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인데

교육자로서 우리 아이를 위한 당신들의 계획은 뭔가요?"

이렇게 당당하고 떳떳하게 요구하고 주장해야 한다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걸 깨닫고 실천하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과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은 해외에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저 그림에서 처럼...

모두에게 똑같이 박스 하나씩 주지 않았냐고, 더 이상 뭘 바라느냐는 사람들을 상대로

무슨 소리냐고, 당신들 눈에는 저게 공평해 보이느냐고

우리 애는 키가 작아서 안 보이니까

저 펜스를 걷어 치우던지, 아니면 박스를 두어 개 더 달라고

싸우고 요구하고 주장해야 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학교와 교사들을 상대하기가 벅찬 경우에는

때로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도와주는 외부 기관들을 찾아가서

미팅을 하고 협조를 구하며 수십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정말 억척스럽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거북 맘은 싸움닭이 맞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싸움닭 신세를 벗어나진 못할 듯하다.


하지만, 거북이 녀석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링 위에 올라가겠다고

전의를 불태우는 거북 맘이다.


우선, 두 녀석 고등학교 졸업시키고 컬리지까지 끝내야 하니

아, 갈길이 참 멀다.

하지만

늘 든든하게 힘이 돼 주는 남편과

누가 거북이 아니랄까 봐 세상 느긋하게 천천히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두 녀석들과 함께 똘똘 뭉쳐서

재미나고 즐겁게, 다가올 시간들을 맞이해 보려 한다.


싸움닭 거북 맘,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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