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 숨겨진 비밀

곶자왈의 식물

가을이 깊어간다. 들판은 은빛 물결로 일렁이는 바다처럼 출렁인다. 짧아서 더 애틋한 계절, 늦가을은 늘 마음을 서늘하게 흔든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곶자왈을 찾았다. 스쳐 지나가던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자연의 묘한 신비가 숨어 있다.

수크령

수크령은 강아지풀을 닮았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소박한 식물이지만, 이슬을 머금은 모습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비에 젖을 때의 청초함, 노을을 품은 듯한 그윽함. 화려하지 않은 소박함에 마음이 끌린다. 뻣뻣한 털 사이로 하얀 낚싯바늘처럼 갈라진 암술과 볍씨 같은 꽃가루를 품은 수술이 있다. 양성화와 수꽃이 달려 자가수분과 타가수분이 가능하다. 수크령은 가을이 깊어갈수록 은은한 빛을 품는다.


한라돌쩌귀

투구꽃을 닮은 한라돌쩌귀는 뿌리가 버선을 닮았다 하여 '버선뿌리'라 불린다. 독성이 강하지만 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꽃잎을 벗기면 작은 투구 속에 감춰둔 꿀샘이 드러난다.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 달콤함. 벌과 나비만이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꿀을 맛본다.


꽃이 피지 않는 고사리에도 신비가 있다. 잎 뒷면에는 생명의 씨앗인 포자가 숨어 있다. 포자는 땅에 닿아 전엽체라 불리는 하트모양으로 자란다. 전엽체는 정자와 난자를 만든다. 수정된 난자는 새로운 새명을 틔운다. 고요한 숲 속에서의 작은 탄생이다.

고사리

자연이 숨 쉬는 곶자왈. 이곳은 단순한 숲이 아니다. 생명의 질서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초입에는 덩굴식물과 가시덤불이 자리해. 바람과 짐승을 막아내고, 쓰러진 나무는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키운다.


곶자왈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공기는 차갑고 상쾌하다. 그곳에는 '숨골'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한 공간. 숨골이 있기에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다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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