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풀
제주에는 크고 화려한 들꽃도 많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풀꽃들이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꽃들이 있어 더욱 돋보이는 자연의 조화.
어느 날은 크고 화려한 꽃보다 작고 앙증맞은 풀꽃이 그리울 때가 있다. 바람만 스쳐도 뚝, 뚝, 소리도 없이 고개를 떨군다. 그 작고 여린 풀꽃에게도 이름이 있다. 탐라풀.
탐라풀을 알게 된 것은 어느 가을이었다. 한라산 탐라계곡에서 처음 발견돼 ‘탐라풀’이라는 이름을 가진 풀꽃. 탐라계곡에서만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토록 작은 꽃,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가슴속에 탐라풀의 이름을 품고 그 씨앗을 조용히 뿌려두었다.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라는 믿음으로. 그리고, 가을 햇살이 스며든 어느 습지에서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느릿하게 발길을 옮기다 보니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를 하얀 풀꽃 하나.
“나 여기 있어요.”
초록 풀잎 사이로 빠끔히 고개를 내밀며 자그마한 소리로 나를 부른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꽃. 5mm도 채 되지 않는 작고 소박한 꽃잎 네 장이 가만히 빛을 머금고 있다. 줄기에는 희미한 백색 털이 감돌고, 바람만 스쳐도 뚝, 뚝, 소리 없이 떨어지는 꽃송이. 그 소리 없는 낙화가 마음속에 잔잔한 음악처럼 스며든다.
가슴 한편에 씨앗을 뿌리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소리 없이 사랑처럼, 기다림처럼, 조용히 마음속에서 피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