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주는 우리의 들꽃. 그 들꽃을 만나지 못하는 날이면, 그리움이 꽃이 되어 꿈길에서 피어난다.
꿈속에서 만난 용담은 유난히 푸른빛을 품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짙은 빛으로 다가와 마음을 온통 푸른빛으로 물들였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그 용담을 찾아 급히 오름으로 향했다. 올가을, 용담꽃과 충분히 눈맞춤하지 못했던 탓일까. 오름 자락에 이르자 바람결에 흔들리는 용담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맘때면 한껏 빛나던 가을꽃들도 겨울 채비를 서두르며 바람 속으로 사라져 간다. 바람에 실려 떠난 씨앗들은 언젠가 다시 꽃이 되어 돌아오겠지.
바람 속에서 빛나는 용담
다갈색으로 물든 오름 위로 세찬 바람이 몰아쳤다. 그러나 그 바람마저 아름다운 물결을 이루며 대지 위에서 춤을 추었다. 빛을 잃어가는 풍경조차 이 순간만큼은 하나의 꿈처럼 펼쳐진다. 숲길을 걷다가, 오름을 오르다가 소담스레 피어난 들꽃을 마주하는 순간, 그 순간은 언제나 작은 기쁨이 된다. 잔잔히 부서지는 햇살을 따라 걷다 보면 들꽃은 마치 나를 위해 피어난 것만 같다. 거센 바람이 몰아쳐도 아름다운 숨결로 피어나는 들꽃들.
그 들꽃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축복이 아닐까.
누렇게 바래 가는 가을빛 속에서 용담은 깊고 푸른빛으로 피어난다. 때로는 청보랏빛으로, 때로는 시리도록 푸른빛으로 피어나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을이 문턱을 넘을 무렵에 피어나 늦가을까지 머무는 용담. 고산지대의 용담은 키가 작고, 저지대의 용담은 키가 크다. 층층이 꽃을 올려 한층 더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마치 거꾸로 세운 종처럼 하늘을 향해 꽃잎을 여는 용담은 정오의 따스한 햇살을 듬뿍 머금고 피어난다. 그러다 해가 기울면 조용히 꽃잎을 다문다.
처음 용담을 마주했을 때,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 기뻤다.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그 작은 꽃 한 송이가 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용담’이라는 이름은 그 뿌리가 웅담보다 더 쓰다는 데서 비롯됐다. 용담의 종류로는 비로용담, 칼잎용담 등이 있다. 특히 흰그늘용담은 고산지대에 피는 봄꽃으로 한라산에서만 자생하는 제주 특산식물이다.
늦가을, 꽃들이 저마다 겨울 채비를 서두르는 동안 아직 떠날 준비를 하지 못한 용담꽃은 한없이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이른 겨울의 문턱에서도 아직은 가을을 품은 듯한 푸른빛. 그 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결 포근해진다. 마치 나를 바라보는 듯한 용담 꽃 앞에서 좀처럼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늦가을 볕을 붙잡듯 그 자리에 한참을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