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며 피어나는 봄

홀아비꽃대와 옥녀꽃대 이야기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홀아비꽃대. 나는 오래도록 그 꽃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못했다.


홀아비꽃대를 두고 누군가 '옥녀꽃대'라 부를 때, 어쩐지 낯설고 의아했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제주에는 홀아비꽃대가 없다는 말에, 옥녀꽃대와 조금 다르다고 느꼈지만, 둘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나는 꽃을 만날 때면 그 이름을 조용히 되뇌곤 했다. 이름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 친숙함은 사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름을 모르면 난감해졌다. 뭐라 불러줘야 하는데, 알지 못하니 머뭇거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꽃에게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꽃의 이름을 알고 바라보는 것과, 이름 없이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른 감정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이름을 부르며 꽃을 사진에 담았다. 그 마음을 안고, 홀아비꽃대와 옥녀꽃대를 만나기 위해 내가 자주 찾는 숲으로 향했다.


누군가 보기엔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를 숲. 하지만 그곳에는 특별한 식물들이 제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꽃을 피워냈다. 작고 초라한 숲이지만, 내겐 충분히 '숲'이라 부를 만한 곳이었다.


그 보금자리에서 나는 숲의 향기와 꽃의 숨결을 깊이 들이마셨다. 홀아비꽃대는 그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피어있었다.


홀아비꽃대는 키도 작고, 꽃도 화려하지 않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네 장의 잎이 짧은 하얀 수술을 감싸 안은 채, 마치 실눈을 뜬 듯 숲을 바라보며 피어있는 모습. 그와의 조용한 만남이 시작되었다.

홀아비꽃대5.jpg 홀아비꽃대


한 개의 꽃이삭이 촛대처럼 길게 솟아올라 있어 ‘홀아비꽃대’라 불린다는 이 꽃을 바라보노라면, 어쩐지 이름 그대로 외로운 홀아비가 떠오른다. 옥녀꽃대와 달리 군락을 이루지 못한 채, 이곳저곳 흩어져 피어 있는 모습이, 더욱 쓸쓸해 보였다.


옥녀꽃대와 비교하면, 홀아비꽃대는 잎에 윤기가 흐르고 수술이 훨씬 짧다. 홀아비꽃대임을 확인하려면, 수술을 떼어 꽃밥의 위치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예상대로 세 개의 수술 중 가운데 수술대에는 꽃밥이 없으며, 양쪽 수술대 밑에 노란 꽃밥이 꼭꼭 숨어 있었다.


홀아비꽃대와 옥녀꽃대는 꽃밥을 수술대 밑에 숨겨 놓고, 하얀 수술이 꽃처럼 보이도록 자연의 배려한 것은 아닐까?


옥녀꽃대는 홀아비꽃대보다 수술이 훨씬 가늘고 길며, 끝자락에는 연분홍빛이 살며시 번져 있고, 은은한 향기까지 풍겨왔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옥녀가 하늘하늘 춤추는 듯한 신비로움이 감돌았다.


홀아비꽃대와 옥녀꽃대는 화피가 없어도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화려함을 자랑하지 않아도, 그들만의 향기를 뿜어냈다.


볼수록 매력적인 꽃들. 외로운 듯 고고한 홀아비꽃대와, 우아한 자태의 옥녀꽃대. 그들이 있어, 숲은 더욱 깊어지고, 봄은 한층 더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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