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꼰대였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될 때가 있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조금 아는 척을 하다 보면 얄팍한 지식이 튀어나오고, 듣는 사람 눈치를 살피기도 전에 말이 앞서버린다. 스스로도 그 모습이 민망하고 부끄럽다. 그날, 수련관에서 있었던 일은 그런 나를 돌아보게 한 순간이었다.


수련관에 입사한 지 석 달쯤 되었을 무렵, 첫 청소년 동아리 축제가 열렸다. 나는 비보이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축제장에 갔다.


무대 위에서 펼쳐진 멋진 춤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속으로 ‘와, 정말 대단한 아이들이다’ 감탄하며 공연을 지켜보았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온 한 친구가 발목을 다쳤다고 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었지만, 나는 걱정이 앞섰다.


주말이라 인근 병원이 모두 닫혀있었고, 나는 그 친구를 서귀포 시내 병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그는 괜찮다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보내줬지만, 마음 한구석이 내내 걸렸다.


그다음 날, 그 친구가 수련관을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물었다.

“발목은 어때? 좀 괜찮아졌어?”

“아킬레스건이 좀 아파요. 당분간은 비보이를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순간 나는 걱정하는 마음에 “아킬레스건이 말이야…” 하며 그 유래를 설명하려 들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다소 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그걸 왜 들어야 해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이건 아니었구나.

나는 얼른 “미안해” 하고, 말을 멈췄다.


그 친구는 아픈 몸을 이끌고 용기 내어 찾아왔고, 나는 그 앞에서 굳이 잘난 척을 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되어 있었다.


그날,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청소년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다면, 먼저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 그 친구는 아마도 걱정해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진심 어린 고민을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으로만 접근했고, 그것은 진심과는 조금 어긋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청소년 앞에서 잘난 척하지 말자. 무엇보다, 그들의 마음을 먼저 들어주자. 나의 조급함과 어설픈 지식보다, 아이들의 진심을 들여다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그 친구가 알려줬다.


그날, 나는 꼰대였다.

하지만 그날이 있었기에, 나는 진심으로 더 나은 어른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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