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조용한 변화

가만히 보면, 조용한 사람들의 안에는 깊은 강이 흐른다. 말수는 적지만 눈빛은 선명하고, 웃음은 드물지만 한 번 웃으면 오래 남는다.


수줍고 조용했던 한 청소년이 있다.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나의 청소년기를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별히 잘하는 것 없이 늘 주눅 들어 있던 그 시절의 나. 그런 나를 닮은 한 청소년이 수련관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렇게 우리 인연은 시작됐다.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은 준혁. 소심한 눈빛과 작게 접힌 어깨, 무리 속에서 늘 한 발짝 뒤에 서 있는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청소년기를 보는 듯했는지도 모른다. 준혁이처럼 나 역시 특기라곤 그림 그리는 것뿐이었고, 세상 앞에 서는 것이 마냥 어려웠다.


그 청소년은 고등학교 1학년. 사춘기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지만, 수련관 활동은 성실하게 참여했다. 혼자였지만, 단단한 내면을 지닌 아이였다.


청소년운영위원회의 첫 회의 시간. 우리는 늘 자기소개에 작은 장난을 곁들였다. 첫 번째 청소년은 한 마디, 두 번째는 두 마디, 세 번째는 세 마디… 그렇게 열 마디가 넘는 자기소개가 되기도 했다. 이 규칙 덕분에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웃으며 앞다퉈 발표하려 했다.


하지만 준혁이는 달랐다. 자기소개는 항상 맨 나중이었다. 목소리는 작고, 말은 느렸으며, 말수도 적었다. 소극적인 태도는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방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랬던 준혁이가 1년이 지나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자기소개에 나섰고, 마침내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회의실 안은 조용해졌고, 우리는 모두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세는 단정했고, 여전히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아이였다.


누군가는 말보다 행동으로 성장을 증명하는 법이다.

청소년 캠프 장기자랑 시간. 준혁이가 무대 앞으로 나섰다.

서툰 비보이 댄스를 추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용기’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 순간만큼은 박수도, 환호도 아깝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그는 수련관 활동을 멈췄다. 하지만 종종 찾아왔다. 시험공부에 지칠 때면 조용히 노래연습실에 들어가 혼자 노래를 부르다 가곤 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을 다독였다.


결국 준혁이는 부산의 한 대학에 진학했다.

여름방학 무렵, 수련관을 다시 찾은 준혁이는 여전히 수줍었지만, 어엿하고 의젓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의 조용한 웃음, 소심한 미소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지금 그는 사회라는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어쩌면 또 한 번의 성장통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성실하게, 그리고 자기만의 속도로 걸어갈 것이라는 걸.

그의 앞날이 부디 따뜻한 햇살로 가득하길 바라며, 오늘도 조용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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