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지키기
충동성이 강한 큰아이는 자기 기분이 나쁘면 본인보다 약한 동생에게 분풀이를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타인의 몸에 손을 대면 이틀간 폰압수를 하는 규정이 있다.
전날 동생을 때린 큰아이는 폰을 압수당했고 다음날 아침 밥알을 깨작이며 밥을 먹고 있었다. 큰아이가 하도 밥을 안 먹고 탈모증상도 있기에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탈모에 해조류가 좋단다. 미역국을 먹이고 싶었던 어리석은 엄마는 아이와 딜을 시작했다. 미역국을 다 먹으면 폰을 주겠다고. 미역국 원샷을 한 아이는 아침 7시 30분에 친구에게 전화를 해 나가 놀 시간을 정하겠다고 했다. 방학인데 이렇게 일찍 전화하면 안 된다고 나는 아이를 타일렀고 아이는 괜찮다고 다른 친구들도 전화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큰아이의 발작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부수고 피아노를 쳐대다가 방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발광을 해대니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건 시간문제... 경찰만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주말부부라 따로 사는 남편에게 영상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영악한 6학년은 아빠 따위는 무섭지 않았다. 어차피 회사 때문에 올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빠에게도 소리를 지르는 아들을 보며 최후의 보루였던 근처 사는 시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는 곧 깨닫게 되었다.
아버님은 집에 오셔서 너희 부부가 잘못됐다고 큰아이가 얼마나 힘들면 저러겠냐며 아이에게 폰을 돌려주라고 하셨다. 아이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단다. 다 그 부모가 문제란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부부에게 쌓였던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셨다.
1.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쫓아다니며 아이들 밥 먹인 것(아이가 하도 작아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운동시키고 싶은 어리석은 부모의 실수였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조차 성장주사를 맞히라고 하셨는데 우리 부부에게는 돈이 없다. 이제는 안 그런다고 말씀드려도 아니라며 최근에도 너희가 밥 먹이는걸 내가 봤다고 우기신다.)
2. 베란다 블라인드 다 올리라고 했는데 안 그런 것(필로티라 안이 다 보인다. 우리 집은 쓰레기 분리 수거장 앞이다. 엄마들이 분리수거하다 ○○이네 저기 사는 줄 알았다며 나에게 이야기해 주고, 밖에서 아이 친구들이 손 흔들며 집안에 있는 나에게 인사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도 아니란다. 낮에는 절대 안이 안 보인다고 우기신다.)
3. 우리 애들 안 보는 책 동생네 갖다 준다더니 아직도 그대로인 거 (명절에만 가는 친정이다. 이번 설에 갖다 줄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추석 때는 뭐 하고 아직까지 안 갖다 줬냐고 타박하신다. 그때 갖다주고 남은 거라고 말씀드려도 아니란다. 책이 줄지 않았단다.)
며느리인 너는 고집이 세서 내 말을 안 듣고 자기 합리화만 한다는 일장연설로 그날의 훈화는 마무리되었다.
결국 할아버지의 응원에 힘입은 큰아이는 기세등등해서 폰을 들고나가 친구를 만나 2시간 동안 오락 삼매경에 빠졌다. 분이 안 풀린 시아버님이 또 나에게 전화하셔서 부모상담을 하려고 하셨으나 시어머님이 막으시고 대신 전화를 하셨다. 큰아이 다독이고 네가 피하라고.
차라리 경찰을 만나는 게 아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을 뻔했다. 정신과 의사는 충동성이 강한 큰아이한테 휘둘리지 마시라고, 아이가 엄마한테 욕하는 건 못하게 하셔야 한다고, 처음에는 엄마지만 나중에는 선생님이 된다고. 중2도 엄마한테 대놓고 욕하고 소리 지르지 않는다고 상담해 주셨다.
아무리 시아버님께 말씀을 드려도 아버님은 엄마가 문제고, 학교 선생님(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큰아이가 너무 말을 안 듣는다고 ADHD가 의심된다고 하셨다)이 잘못 판단하셨단다. 큰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란다.
큰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라고 시댁과의 왕래는 하지 말아야겠다. 물론 큰아이는 부모와 수틀리면 시댁으로 가겠지만 밖에서 배회하는 것보다 안전한 할아버지집에 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단, 더 이상 시아버님을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고 시댁도 가지 않겠다. 손주를 사랑하시는 아버님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건 할아버지가 아닌 부모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