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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Jun 29. 2022

평균 예찬

“꿈이 없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이런 류의 명언은 그 멋짐으로 인해 아무도 정말 맞는 말인지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기 어렵다. 꿈을 가지라는 교훈을 강조하기 위함이겠으나, 꿈이 없으면 실패한 삶이라니. 꿈을 가진 사람은 의욕도 열정도 그리고 희망도 갖게 되니 누구나 꿈을 갖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꿈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확신컨데 이런 꿈이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보다 꿈이 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거다. 부모가 만들어준 꿈, 강요된 꿈, 그리고 꿈이 없음이 부끄러워 만든 거짓 꿈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과연 그들에게 네 인생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꿈을 자랑한 적 없어도 열심히, 울고 웃으면서, 그리고 착하게 살아가는 무수한 이들의 삶은 결코 실패한 삶이 아니다. 그래서 이 명언에 대해 난 이렇게 말하련다. "뭔 이런 그지 같은 말이 있어."


여자들은 모두 S 라인에 날씬한 몸매를 꿈꾸지만, 많은 여인들은 일자 몸매에 50킬로, 심지어 60킬로의 몸을 갖고 산다. 모든 남자들은 키 180에 초콜릿 복근을 꿈꾸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작은 키와 좁은 어깨와 통통한 뱃살로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싫다. 모든 엄마들은 자기 자식들이 천재이길 바라고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지만, 대부분의 자식들은 공부하기 싫어하고 그저 적당한 성적을 받고 대학에 가는 것도 어렵다. 모든 아버지들은 승진해서 임원이 되거나 성공한 사업가가 되길 원하나, 그들의 흔한 삶은 찌든 만년 과장이거나 퇴직금으로 변변치 않은 치킨집을 하다 망한다. 그러면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무시당하고 소외당하곤 한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나, 많은 가정들은 망가지고, 슬프고, 아프고, 불행하다.


“꿈이 없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이 멋진 말 앞에 정말 그렇냐고 되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남들은 다 꿈이 있는데 나만 꿈이 없으니 나는 인생의 패배자인가 열등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이 없이 그저 자신의 인생을 감당해내면서 살고 있다. 꿈을 생각해볼 만큼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 버티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네 꿈이 무어냐고 묻는 것은, 그리고 꿈이 없음을 꾸짖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몰이해와 무례함이다.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균적 삶을 살아내고 있다. 평균은 그런 거다. 가장 확률이 높은 삶. 평균 수명이 80이란 말은 누군가는 90을 넘겨 살지만 누군가는 60에 죽는다는 말이다. 내가 60에 죽는다면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저 평균을 유지하는 자연의 섭리일 뿐이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암에 걸리고, 사기당하고, 자식이 대학에 떨어지고, 남편이 사업에 망하고, 부모가 치매에 걸리고, 우울증에 걸리고, 이혼하고, 자녀가 가출하고, 너무 가난하고, 배신당하고, 대머리가 되고, 그리고 늙고 병들어 죽고. 이 모든 것이 평균을 이루는 자연의 섭리일 뿐이다.


이런 일들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야 한다.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평균에 대한 무지이며 인생에 대한 오해일 뿐이다. 평균이라 함은 내게 그런 불행이 찾아오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란 뜻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찾아와도 내가 아니라 다행이며 넌 왜 그러느냐 한심하게 여겨서도 안된다는 말이다. 그저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그런 것이 인생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므로 평균으로 사는 것은 가장 인간답게 산다는 말이다. 인간의 삶은 그렇게 장밋빛이 아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삶이 그렇게 행복한 게 아님을, 오히려 더 많은 불행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배우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요란 떨 필요가 없다. 왜 나만 힘드냐고, 왜 나만 가난하냐고, 왜 나만 불행하냐고. 그건 마치, 너무 행복하다고 해서 요란 떨며 감사하고 자랑함이 재수 없음과 동일하다. 어차피 삶은 평균이니, 내 불행과 행복도 확률적으론 평균이다.


그래서, 평균의 삶은 (그 이하의 삶을 포함해서) 칭찬받아 마땅하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얼마나 무시당했을까. 얼마나 좌절하고 자책했을까. 부끄럽고 미안하고 때론 죽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가장 인간적 모습으로 사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평균을 칭찬 하지도 인정 하지도 용납하지도 않는다. 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평균적 인간은 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자괴감을 억누르며 억지 꿈을 만들어 대답한다. 꿈이 없는 삶은 실패한 인생이란 말은, 좋은 말이라 칭송되곤 하지만, 사실은 정말 나쁜 말이다. 평균적 삶을 버티며 살아내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열등감과 상처를 주는 말이 어찌 좋은 명언이 되느냐 말이다. 거짓이다.


존경하는 한 목사님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이 있고, 하나님의 눈길이 향하는 곳을 우리가 바라보고, 하나님이 가시는 곳에 우리의 발걸음이 있기를." 그러니까, 고통당하는 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처럼 우리도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마음 두기를. 그러니까 그다지 행복하지도 그다지 성공하지도 못한 평균적 인생에게 마음 두기를. 그것이 인간을 살리는 참 신앙이다.


사랑할 만한 자를 사랑하는 것이 무슨 자랑이냐고 한다면, 꿈도 없는 평균적 인간을 사랑함은 큰 자랑이다. 평생을 분명히 평균 이상으로 살아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나마, 의지적으로 나마, 평균적 삶을 옹호하고 사랑하려 애쓴다. 남편 자랑, 돈 자랑, 자식 자랑, 성공 자랑, 꿈 자랑, 신앙 자랑, 행복 자랑, 심지어 감사 자랑, 또 무슨 자랑. 이런 그지 같은 자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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