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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Jun 30. 2022

은퇴 후의 상실감, 두려움

은퇴한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에 대해 조사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첫째는, 가족의 태도 변화였다. 당연하다. 많은 아내들은, 적어도 내 아내는, 내 남편이 어떤 직장에 다니고 무슨 일을 하고 얼마를 벌어오는지를 은연중에 자랑하고, 자랑하지 않더라고 최소한의 자부심으로 여긴다. 그런데 남편이 은퇴를 하여 백수가 되면, "남편은 뭐 하세요"라는 질문이 괴롭다. 그럼 자연스레 남편에 대한 실망과 원망으로 이어짐도 이해된다. 다른 아내들에게 자랑할 것이 없는 백수 남편이라니. 자식들도 이해된다. 아버지는 늘 가족의 기둥이었다. 돈을 벌어와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먹이고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절대적 존재였다. 그러나 더 이상 아버지는 그런 수퍼맨이 아니다. 아버지가 은퇴할 즈음에는 자식들은 장성해서 스스로 돈을 벌기도 하니 아버지는 더 이상 집안의 절대적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직장도 없고 돈도 벌어오지도 못하는 백수라면.


은퇴 후에 집 뒤의 산에 오른 적이 있다. 배낭에 마실 물과 가벼운 책 한 권, 그리고 수건 한 장을 넣고 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면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예전의 등산과 달리, 그저 나 같은 남자들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배낭 메고, 작은 바위에 앉아 책이나 신문을 읽기도 하고, 가져온 김밥을 먹는 사내도 있었다. 아, 나 같은 백수들이 많구나. 집에 있으면 아내와 자식들의 눈치가 보이니 그저 집을 나선다고 한다. 마실 물과, 점심을 때울 김밥 한 줄도 사고, 무료한 시간을 때울 신문이나 책을 가져간다. 그리고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르는 것은 잡념을 잊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넘쳐나 부담스러운 시간을 소비하기에도 좋으니까. 그리고, 저녁 즈음에, 마치 직장에서 퇴근하듯 집으로 돌아간다.


은퇴 후 느끼는 두 번째 상실감은 월급이 안 들어온다는 사실이란다. 은퇴하고 나면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알 수 있다. 나는 연금을 받으니 천만다행이다. 만일 연금이 없었으면 결코 그렇게 일찍 은퇴를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을 고백한다. 적지만 그래도 매달 월급이 들어온다는 것이 이렇게 큰 안심이 됨을 예전엔 짐작조차 못했다. 은행에 3억 원이 있는 것과 매달 200만 원 연금이 들어오는 것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뭐 그런 비슷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당장은 3억이 더 크다. 그러나 통장의 3억은 계속 줄어드는 것이지만, 연금 200만 원은 매달 변함없이 통장에 입금된다. 경제적인 크기를 따지기 전에 심리적인 안정감에서도 연금이 좋다는 것이다. 인정한다. 매달 지급되는 연금은 은퇴 후 느끼는 상실감과 불안을 희석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위로가 된다.


예전 잘 나갈 때, 그러니까 내가 먹고살 수 있는 이상의 약간의 저축이 있었을 때, 가까운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 나도 월급으로 하루살이를 해야 했으니까. 갑자기 내게 큰일이 생기면 난 쓸 돈이 없는 거니까. 그래도 나보다 더 어려운 후배들이 고민하다 내게 부탁한 것이니, 그리고 그 어려운 부탁을 들어줄 능력이 있었으니, 반은 기꺼이 그리고 반은 마지못해 돈을 빌려주었다. 은퇴 후에 월급을 받는 위로를 더 크게 느끼기 위해 제안을 했다. "어차피 한꺼번에 갚은 수 없잖아. 그러니까 매달 조금씩 갚아주렴. 나도 월급 받는 기쁨을 느낄 수 있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두 명의 후배들이 매달 몇 십만 원씩 갚기로 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채무였지만, 그리고 이자도 없이 원금만 오랜 기간 조금씩 나누어 받는 것이니 당연히 손해지만, 은퇴한 자가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실감을 보상해주니 생각보다 더 큰 위안이 된다. 매달 연금과 후배들이 갚는 돈을 합하면, 내 월급은 늙은 백수가 살아가기에 모자람 없는 큰 돈이었다. 다행이고 안심이고 감사하다.


내가 느끼는 은퇴한 후의 또 다른 상실감은 잊혀짐이다. 은퇴 직후에는 하루에도 열 통 이상 전화를 받았다. 직장 동료들과 제자들이 주역이다. 어떻게 지내느냐. 보고 싶다. 네가 없으니 직장이 영 재미가 없다. 한번 보자는 둥 곧 집으로 쳐들어 가겠다는 둥. 나에 대한 그들의 그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점점 연락의 횟수가 줄어들었고 그러니 나도 먼저 연락하기가 어색했다. 자주 연락할게요. 자주 찾아뵐게요. 이런 인사치레는 사실 거짓이고 좀 심하게 말하자면 희망고문이다. 내가 보고 싶다 말하는 자들의 소식은 점점 희미해질 것이고, 어쩌다 연락이 오면 그들은 좀 더 자주 전화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할 것이다. 그럼 나는 무슨 잘 못을 했다고 사과를 하는 것이냐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지 마. 그저 가끔 안부만 전해줘도 고맙지." 그렇게 쉽게 잊혀짐이 당연할 것인 줄 이미 알았지만 막상 겪고 보니 서운하고 후회스럽다. 서운함은 그들에 대한 작은 원망이고, 후회는 내가 좀 더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음을 확인하게 된 것에 대한 자책이다.


그러나 은퇴 후에 느끼는 가장 큰 상실감은 무력감이다. 일을 해야 했던 시절엔 하루를 정말 바쁘게 지냈다. 해야 할 일들도 많았고 체력도 능력도 있었고, 그러니 집중력과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꼭 해야 할 일이 없어지고 난 지금은 정신을 집중해서 피곤함을 이기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니 당연히 늘 나른하고 무료하고 조금만 피곤해도 소파에 누워 잠을 자게 된다. 물론 그동안 더 늙었음도 이유가 되지만,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함이 가장 큰 이유임에 틀림없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필연성, 그리고 동기를 찾지 못하니 당연히 삶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은퇴할 자에게 교훈이다. 은퇴 후 은퇴 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열정적으로 할 일을 준비하라. 그렇지 않다면 나처럼 성급히 은퇴하지 말라고.


잊혀짐과 무력감은 결국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내 삶이 끝나가는구나. 내 인생이 이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구나. 아무도 내게 관심도 기대도 갖지 않는구나. 삶이 의미 없어지고 사그라지고 끝나가는 걸 인지하는 순간 공포가 몰려온다. 죽음의 공포. 아니 죽어가는 공포. 나이 들어 가끔 잠을 자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벌떡 일어나 방에 불을 다 밝히고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곤 한다. 나는 지금 뭐가 두려운 건가. 죽음? 아니었다. 두려운 것은 죽어가는 과정이었다. 끝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 길을 나 혼자 가야만 한다. 그 누구도 함께 갈 수 없는 길이니 고독하고 무섭다. 차라리 당장 끝이 났으면 좋으련만, 벗어날 길도 없는 죽음을 향해 걸어감을 포기할 수도 멈출 수도 없다. 그리고 그 길에는 나 혼자 뿐이다. 그것이 두려운 것이었다. 내 아버지의 죽음에서 배웠으리라. 이미 죽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버티고 거짓 희망을 갖고 애썼던 그 과정들. 그리곤 결국은 죽음. 죽음의 공포는 미처 다 알 수 없지만 분명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무서울 것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 길을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하면서, 버티면서, 외로이 가야 한다는 분명한 사실. 물에 빠져 숨을 쉴 수 없어 괴로워하면 죽어가는 장면을 종종 상상한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고통이다. 죽어감도 그럴 것 같다. 숨쉬기 어렵고, 몸은 통증으로 아프고, 아무런 희망도 없고, 침대에 닿은 등이 곪고 아파도 어쩔 수 없다. 겨우 은퇴했다고 이런 고통을 느낀다면 무슨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이런 공포는 점점 더 자주 찾아올 것이 분명한데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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