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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 Jun 30. 2022

송사리

어제는 종일 그리고 또 밤새 비가 내렸다. 차양과 시멘트 바닥과 여기저기 부딪쳐 내는 빗소리가 좋아 창을 활짝 연다. 비 소식이 있으면 며칠 전부터 설레다가도, 수시로 바뀌는 일기예보로 비 소식이 사라지거나 늦춰지면 괜스레 서운하다. 밤에는 빗소리가 제법 거셌다. 열어 놓은 창으로 비가 들이쳤지만 그래도 소리를 닫을 수는 없었다.


문득, 송사리들이 걱정됐다. 집 앞에는 작은 개천이 있는데 강아지들 산책시키다 보 송사리들이 살고 있다. 겨울이 끝나면 작은 새끼 송사리들이 보이기 시작하다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몸집도 커진다. 여름이 되기 전 늦은 봄이 아마도 피크 같은데 그때는 제법 자란 놈들이 수십 혹은 백 마리도 넘게 모여 산다. 물이 흐르다 머무른 웅덩이 같은 곳에서 짝짓고 새끼 낳고 그렇게 지내나 보다. 그런데, 비가 이렇게 내리면 그 작은 개천은 더 이상 평화로운 곳이 아니니 어쩌나. 물이 많아지면서 흐름이 거세진다. 보고 있으면 조금 무섭기까지 하다. 사람도 서있지 못하고 떠내려 갈 정도인데 그 작은 송사리들은 어찌 될까.


그 작은 아이들에게 비 올 때의 개천은 광포한 폭포 같을 것이다. 거세게 파도치면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물의 괴력에 작은 송사리들은 그저 쓸려가고 떠내려 갈 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으리라. 떠내려가다 돌들에 부딪치고 물가 거센 풀들에 쓸리고 폭포처럼 곤두박질쳐지고 또 떠내려가고 또 다치고. 살 수 있을까. 거센 강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생각해보면 송사리가 살아날 확률은 전혀 없을 것 같다. 설마, 어쩌면 너무 작고 가벼워 그저 물에 잠겨 떠내려가기만 할 뿐 다치지 않을 수도 있으려나. 사람처럼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어 죽는 건 아니니까. 그러다가 흐름이 잦아든 어떤 넓은 곳에 도착하면 다시 짝짓고 새끼 낳고 그렇게 살 수 있으려나. 다 죽었으려나. 살아났을까.


어떤 수족관에서 키우던 돌고래가 죽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다. 열악한 개 공장에서 구조된 아이들, 인간이 놓은 덫에 걸린 곰과 고라니 따위의 야 동물들, 그리고 가슴 아프게 죽어가는 이런저런 짐승들의 소식이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감동을 자아내는 일은 흔하다. 말 못 하는 짐승들의 아픔과 고통과 죽음이라서 더 슬프다. 그런데, 개천에 사는 송사리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미루어 짐작하는 안쓰러움도 없다. 궁금하지도 않고 설사 죽었어도 어쩌랴. 개천이 다시 평화롭게 잔잔해지면 어딘가에서 송사리들이 또다시 나타나 평화로운 군락을 이룰 것이고, 그러다가 다시 비가 많이 내리면 그 아이들은 쓸려가 사라질 것이고, 그렇게 반복될 것일 뿐이다.


다니던 직장에서 교감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지위가 높으니 당연히 학교에서 유명인사였고 학생들에게 감동적인 연설을 많이 해서 팬들도 많았다. 암으로 투병하셨고 한 때 다 나았다는 간증도 해서 대중들의 감동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분은 결국 죽었다. 그리고 그분의 장례식은 너무나도 화려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분의 업적을 기리고 그 분과의 인연을 고백하는 몇 명의 사들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눈물 흘렸고 이런 대단한 장례식에 참석했음에 스스로 감동했다.


다니던 직장에서 또 한 분이 돌아가셨다. 그저 평범하고 인기 없는 선생이었다. 자신을 내 세울 줄도 몰랐고 수업도 재미없었고 친분도 좁았다. 간암으로 투병하시다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장례식장은 너무나도 허전하고 쓸쓸했다. 가족들과 몇몇 동료들, 그리고 소수의 학생들이 전부였다. 그분의 부고 역시 직장과 졸업생들에게 다 알려졌건만, 왜 이렇게 쓸하게 그분을 보내는 건가. 아. 그분은 송사리였구나. 수족관의 돌고래도 아니고, 유명 연예인도 아니고, 무슨 감동적인 스토리를 가진 분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삶을 버티며 소문 없이 살아내다가 암에 걸렸고 힘들게 투병하다가 생을 마감한 분이었다.


두 죽음은 같지만 너무나도 달랐다. 너무나도 화려하고 억지스러울 정도로 감동적인 장례식과, 그리고 너무도 쓸쓸하고 안타까울 정도로 건조했던 장례식. 그렇다. 생명의 죽음은 똑같이 슬퍼야 하지만, 생명의 유명함과 에 따라 죽음은 다르다. 세상에서 미미한 존재는 이런 법이다. 고통당하거나 죽거나 사라져도 세상은 아무 미동도 하지 않는다. 관심조차 없다. 송사리도, 감히 신파를 부리자면 나도, 그런 존재들이다. 장대비가 내릴 때마다 개천의 송사리들을 걱정하는 것은 내가 송사리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송사리가 많다. 그들의 생명과 죽음은, 그 어떤 그런 것들과도 같지만, 똑 같이 대접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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