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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Aug 25. 2024

섬진강변에서 생긴 일


일 년에 세 번 정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형제들과 '고달교'를 건넌다.

부모님 기일과 여름휴가이다. 고달교를 건너면서 낯선 풍경을 만난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내 머릿속에는 옛날 섬진강 모래사장이 그대로 남아있다. 

강물과 함께 떠내려 온 모래와 흙이 세월이 흐르면서 차곡차곡 쌓였다. 모래톱이 쌓이면서 버드나무와 다양한 식물들이 리내리고 무성하게 자랐다.

지금은 모래사장은 간 곳 없고 습지가 형성되었다.

장선 습지, 고달습지, 침실습지로 사진작가들과 여행객들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섬진강  모래사장에서   피서 즐기는 모습. 다리 밑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며칠 전 오래된 앨범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던 옛날 사진을 발견했다.

팔십 년대 후반으로 여름휴가를 맞이해서 시집형제들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섬진강변에서 피서를 즐기던  사진이다.

오랜만에 자녀들이 다 모이자 어머니는 신이 났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했다. 몇 칠전부터 어머니는 우리 최서방은 익은 김치를 좋아한다며 노래를 부르고 다니셨다. 갖은양념으로 정성 김치를 담가서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알맞게 익자 냉장고에 신줏단지 모시듯 넣어 두었다.

지난 장날 통통한 먹갈치도 사 오더니 어라! 어라! 비린내 난 게 내가 씻을란다 하셨다.

담장 타고 올라간 호박잎 뚝 뚝  뜯어다가 갈치 비늘을 으득 으득 벗겨냈다.

감자 밑에 깔고 지저 먹거나 구워 먹어도 맛있는 갈치다. 저녁 밥상에 구운 갈치를 손가락을 쪽 쪽 빨아가면서 먹었다.




틑 날 열무김치, 익은 배추김치, 상추와 깻잎, 돼지고기, 쌈장, 풋고추 등 챙겼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지난밤에 막걸리 넣고 발효해서 쪄낸 술빵이다. 스펀치처럼 부드러워서 손으로 찢으면 숭덩숭덩 구멍이 뚫렸다. 제법 크게 네모지게 자른 술 빵 몇 개를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큼지막한 아이스박스도 창고에서 꺼내와 씻어서 말려 두었다. 얼음 덩어리와 함께  과일과 음료수 챙겨 넣었다.




시어머니는 아침에도 바빴다. 막걸리  배달 나간 경운기가 들어왔는지 수시로 안집과 주조장을 왔다 갔다 하셨다. 전화해도 되건만  시 어머니는 부지런한 분이셔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빨랐다. 마침내 술 배달을 마친 경운기가  딸딸딸 소리 내며 안집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경운기 소리가 들리방에서 뛰나왔다. 아이스 박스 음식 담은 다라이,  돗자리, 여벌 옷 가방 등 올리기도 전에 아이들이 먼저 신이 나서  올라탔다. 어른들은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에 있는 섬진강변으로 양산을 쓰고 나갔다. 시숙님은 오토바이에 어머니를 태우고 출발하셨다.




그 시절에는 한 여름 더위를 고달교 다리 밑에서 즐기는 게  최고 피서다.

투망 쳐 건져 올린 은어 은빛으로 햇볕에 더 반짝거렸다. 매초롬한 은어회를  초고추장 찍어서 깻잎이랑 같이  먹었다.

 실크보다 부드럽고 입안에서는 참외 향기가 퍼졌다.     

물놀이를 하는 중 시어머님이 우리들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다.

섬진강에 나오셔도 부지런해서  피서 나온 이웃집으로 마실 가신 게 아닐까? 막내아들이 농담하며 어머님을 두리번두리번 찾았다. 그러더니 다음 달 “선데이서울”에 우리 어머님이 표지모델로 나올 것이요. 매형! 서울 가면 꼭 사서 보쇼잉 했다.

우리들과 좀 더 떨어진 곳에서 어머니는 웃옷을 벗고 한참 목욕을 하고 계셨다.

큰 며느리가 얼른 큰 수건을 챙겨서 어머니께로 가져가자 “  시원흐다 니그들이랑 오랜만에 매를 감은게 참말로 좋다 “ 하시며 모래 위에 놓인 생 모시적삼을 걸쳐 입으셨다.




교사로 재직 중이신 시숙님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모래사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시켰다.

물기가 줄줄 흐른 수영팬티만 걸쳐 입고

비장한 모습으로 한 줄로 섰다.

신호가 떨어지자 저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느라 얼굴이 붉어졌다.

달리기가 끝나자 서로 모래더미를 던지며 뒹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자 아이들이 엄마들 달리기 보라고  아우성을 쳤다.

며느리들과 딸이 학교 졸업하고 때 아니게 처음으로 모래판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학교 다닐 때부터 여덟 명이 달려도 삼 등 안에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 형님들은 벌써 포스부터 달랐다. 학교 다닐 때부터  달리기 선수로 뽑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부터 기가 눌러 일등은 아예 접어두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은 제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시누이다 그러나 달리기가 시작되자 형님들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시누이와  막상막하였다.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시누이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일등꼴등도 형님들과 시누이와 필자가 공동으로 차지했다. 한 녀석이  맨날 일등 하라더니 엄마는 왜 꼴등 했어? 하고 따지는 소리에 다 같이 배를 잡고 웃었다.     




형제봉에 걸쳐 있던 해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각자 짐을 주섬 주섬 챙겨서 섬진강 둑으로 올라섰다.  옆 동네는 벌써 모깃불을 피웠는지  마른 쑥과 풀더미 타는 냄새가  강둑까지 퍼졌다. 섬진강 다리를 건너자 딸딸딸 소리 내며 경운기가 환한 불을 켜고 달려왔다. 아이들은 또다시 함성을 질렀다. 오랜만에 타본 경운기는 짐을 실은 용도라 속된 말로 갈비뼈 순서가 바뀔 것처럼 떨렸다. 그런데도 좋았다.

오래된 앨범 속에 갇혀 있던 사진들이 저마다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담고  내 눈과 마주쳤다.    

 



고달교가 세워진 건 1970년대이다. 다리가 세워지기 전에는 나룻배를 타고 다녔다.

그때 당시 곡성지역 국회의원께서 다리를 놓아주어 고달면 주민들이 편하게 읍내를 오고 갈 수 있었다. 특히 농산물을 가꾸어서  자녀들 학비와 가용을 썼던 우리 부모님들에게는 다리가 자가용만큼이나 편리했을 것  같다.          

은빛 모래라고 자랑했던 섬진강 모래사장은 세월과 함께 떠내려갔다. 이제는 무성한 버드나무와 갈대, 식물들로 가득 찬 습지가 되어 환경부에서 22번째 '자연 생태 습지'로 지정되어 섬진강 유일의 '국가보호습지'가 되었다.


 자녀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고 놀았던 그곳도 버드나무와 갈대, 식물들이 우거지고 섬진강물은 돌아서  굽이 굽이  흘러가고 있다.         

경운기 대신 시골에서도 트럭이나 자가용이

고달교를 오늘도 오고 간다.

우리들이 누리고 즐겼던 자연을 후손들에게 얼마나 훼손하지 않고 물려줄 수 있을까?  

자연생태 습지보다 주단처럼 깔려있던 모래밭이  고달교를 건널 때마다 그립다.


사투리 풀이

매-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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