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미숙 Aug 14. 2024

솔은 부추입니다.

사는 이가 없어도 때가 되니 잎이 무성하게 자란 식물들이 우리들을 반긴다.

부산, 거제도, 남해, 하동을 거쳐

부모님이 계셨던 빈집에 도착했다.

청소부터 하고   방 하나씩 차지하고 누웠다.

이른 저녁을 먹었던 터라 배도 부르고 피곤이 밀려왔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막내 오빠랑 올케가 사과를 한 아름 안고 들어섰다.

사과 농장을 하는 오빠 내외는 이른 새벽과 해 질 녘에  농약을 한다.

더운 날씨에 비옷 입고 농약 하다 보면 땀이 물처럼 쏟아져 짠 기마 저 없어진다고 한다.  

두 분 다 사과 농사가 힘든지 얼굴이  야위었다. 오빠는 곱슬머리에 머리도 풍성하고 얼굴도 갸름하니 외국 배우 같았다. 지금은 농약 때문인지 머리가 많이 빠졌다.  겨울 되면 또다시 살이 오르지만 여윈 두 분을 보니 짠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른 새벽 시골 청량한 공기에 눈을 떴다. 꽃을 좋아했던 엄마는 꽃밭을 사계절 내내 가꾸었다. 주인은 가고 없지만 빈집에 겹 금계국이  노랗게 피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마당에 푸른 잔디도 햇볕에 윤기를 내며 반짝거렸다. 틈만 나면 호미 들고 꽃모종 심고 잔디 사이사이에 풀을 뽑아냈다. 예전만 못하지만 폭염에도 끄덕 없이 서있는 꽃나무들이 대견했다. 동 백, 파초, 목단, 담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와 포도나무와 어울러 축 늘어진 능소화랑 인사했다. 주인 없어도 너희들끼리 피고 지고 했구나 하고.


오래전부터 감나무 밭과 본가 뒤꼍 텃밭에 심어 놓은 부추 우리 지방에서는 솔이라고 불렀다. 엄마가 감밭에 있던 솔을 한 삽 떠서 읍내 집에  심었다. 몇 포기되지 않던 솔이 해년마다 쑥 쑥 자라 여름휴가철만 되면 우리들 먹거리가 되었다.

뒤뜰에 있었던 솔을 찾아보니 무성한 풀만 이슬을 머금고 있다.

풀을 헤치고 보니 솔이 풀사이사이에  숨어 있었다. 언니랑 솔을 베었더니 한소쿠리나 되었다. 누가 가꾸지 않아도 솔은 생명력이 좋아서 쑥 쑥 자란다. 풀 속에 숨어있던 솔은  뻣뻣하지 않고 부드럽고 향기도 그득했다. 식탁에서 지나간 신문지를 펼치고  솔을 듬었다.

부모님은 가셨지만 곳곳에 많은 것을 남겨두었다. 한없이 기어가는 고구마 줄거리 우둑우둑 따서 껍질 벗기고 살짝 삶아서 솔과 함께 김치를 담가도 훌륭한 여름 반찬이 되었다.  매운 고추 몇 개  숭덩숭덩 썰고 손질해 놓은 솔과 함께  조선장 넣고 간 맞추어 전을 부쳤다.  갓 구워낸 바삭한 전을 후후 불어가며  입안에서 돌려 먹고 나면 혓바닥을 델 때도 있었다. 전이 식으면 식은 대로 꼬독꼬독하니 맛있었다.

손님이 갑자기 오거나 급할 때 솔은 여름 반찬으로 요긴하게  쓰임새가 많았다. 삶은 가지에 듬성듬성 썰어서 고명으로 올리기도 하고 오이 무침할 때도 같이 무쳐 내면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았다. 부산 올케 언니도 읍내에 있는 솔을 화분에 심어서 가져갔다. 유치원 옥상 한쪽 귀퉁이에 심었는데 해년마다 솔 밭이 영토 확장이 되었다.  이번에 부산에 가니  솔김치를 맛나게 담가서 내놓았다.  감나무 밭에 있던  솔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옛 조상들을 그리게 한다.




친정과 가깝게 사시는  큰 시숙님이 편찮으셔서 인사차 들렀다. 다행히 회복이 되어서 바깥출입도 자유롭게 해서 한시름 놓았다. 꼭지에 물이  주르르 흐르는 연하디 연한  애호박 한 덩이가 식탁에 올려져  있었다. 수박 먹고  일어서니 "작은엄마! 호박 가져가실래요"? 하길래 나도 모르게 주면 좋지 예쁘고 맛있게 보이네 하고 덥석 받았다.

남편이 옆에서 눈치를 줬다. 생각해 보니 시골이라 시장 보기도 힘들 텐데 혹시 저녁 반찬거리 아니야? 했더니 우리는 또 텃밭에서 따오면 되지요 하길래 가방에 넣었다. 큰 집에 오면 쌀 한 포대, 마늘, 호박잎, 풋고추, 깻 잎, 고구마 줄거리 주섬 주섬 따서 한아름 안겨주던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형님 생각이 난다.

형부랑 언니는 산소 다녀오는 길에 노각을 가져왔다.

초등친구 만술이는 여름 내내 땀 흘려 가꾼 옥수수한 포대. 멜론 한 박스를 일부러 가져왔다.

휴가 마지막 날 여기저기서 주었던 푸성귀를 차 트렁크에 가득 실었다.

텃밭에 심었던 채소와 열매로 정을 나누고 살았던 옛날 밥상 눈앞에 그려진다.


달릴수록 길이 넓어진 메타스퀘어 길 옆에는 푸르름이 가득하다.


올여름휴가를 마치면서 ~~~

# 노각 # 빈집 # 호박 #  솔김치 # 고구마 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