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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피고, 그리움은 깊어지고

그 꽃밭엔 꽃보다 향기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는 마음속에서 피어난다.

by 진주


마당 한쪽에 소박하게 자리 잡은 꽃밭.
봄이 되면 수선화가 고개를 내민다.
난초는 한쪽에서 연한 빛으로 올라온다.
몽우리 맺은 꽃대가 솟아올라 다홍빛으로 피어난다.


달리아는 가을걷이를 마치고
뿌리째 뽑혀 금이 간 항아리에 묻혔다.
나무청 옆에서 긴 겨울을 버텼다.

봉선화, 채송화, 맨드라미, 해바라기도
마당 밖에서 겨우내 잠을 잤다.

추운 겨울, 흰 눈이 소리 없이 내려
꽃씨들을 하얀 이불처럼 덮어 주었다.


봄이 왔나 보다.
졸졸졸 냇물 소리가 들려온다.
버들강아지가 봄바람에 입을 틔우더니,
시냇물 속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흘러간다.


부엌 한쪽에 놓인 항아리에서
오빠는 조심스레 달리아 뿌리를 꺼낸다.
"야! 시원하다."
달리아는 모처럼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다시, 모인 친구들 곁에서
뿌리를 내린다.


우리 집 꽃밭은 밤새 시끄러웠다.
서로 먼저 싹 틔우겠다며 속닥속닥,
자신의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가장 아름답게 꽃을 피워냈다.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시던 할머니,
그 연기 속에서 시 한 수 읊조리신다.

“꽃이 있응께 좋타!”


뒤꼍 장독대와 앞마당 한쪽에
소박하게 자리 잡았던
그 유년의 꽃밭.
봄이면 그 향기가 지금도 나를 찾아온다.


“향기로운 꽃 내음은 바람에 실려
백 리까지 퍼져나간다.
그래서 화양백리라 한다.
그러나 사람 향기는 그리움과 같아서
만 리를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인향만리라 한다.”
— 이기주, 『언어의 온도』 중에서


유년의 시절, 고향 집 꽃밭은
그리움으로 가득한 인향만리였다.
꽃을 보며 함께 기뻐하던
할머니, 엄마, 오빠…

그리고,
추억 속에 함께하지 못한 아버지.
다들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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