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가운데 가로지르는 냇물이 조굴탱이를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앞산과 뒷산이 포근하게 감싸준 우리 동네 '고달'이다.
세상과는 단절된 동네처럼 산속에 푹 쌓였지만 섬진강으로 나가는 길이 툭 터졌다.
복식이 집 앞 사거리가 우리 동네에서는 가장 큰 아고라 광장이었다.
튀밥 장수가 와도 그곳에 진을 치고 하루 종일 뻥! 뻥! 소리 내며 뻥튀기를 튀었다.
동네 조무래기들이 뻥! 튀는 소리를 듣자마자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달려 나왔다.
하늘에서 벚꽃이 떨어진 것처럼 흩어진 튀밥을 주워 먹느라 아이들 손이 서로 부딪쳤다.
추석이 되면 그곳에 작은 무대를 만들고 콩쿠르 대회도 열렸다.
동네 오빠, 언니들이 고구마로 깎은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노래 불렀다.
그곳에서 바라보면 섬진강 너머에 철길이 아시무락하게 보였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은 오지 마을에 유일하게 세상과 연결시켜 주는 것이 섬진강 나룻배였다.
또 여수에서 출발해서 서울까지 가는 기차였다. 쉽게 갈 수 없는 서울이라는 곳, 그곳에 가면 돈이 바닥에도 떨어져 있는
환상의 도시로 알았던 시절이었다.
달리는 기차를 보며 미지의 세상으로 날아갔다.
섬진강 너머 철길에서 기차는 산 허리를 돌아 머리를 들이밀고 올라왔다.
집집마다 시계도 없던 시절 우리는 그때가 오전 열 시라는 것을 알았다.
오후 세시가 되면 기차가 한대 또 지나갔다.
복식이 집 앞에서 놀다가 기차를 보고 새 또랑 밭, 평문이 밭, 애똥 밭, 고란으로 흩어졌다.
젖먹이 동생들 엄마 찾아가서 젖 주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젖 먹는 소리,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배부르게 느껴지는 시절이었다.
우리 작은 엄마는 한동네에서 시집왔다. 동생이 나하고 사돈이 되었다. 큰 누나 정이 그리워 우리 집을 자주 놀러 왔다. 그때마다 앞, 뒤안으로 뛰어다니며 술래잡기하고 놀았다.
어느 날 같이 놀던 육촌 언니가 장작개비를 날려서 외아들인 사돈 이마에 상처를 냈다.
피가 났다. 겁이 났다. 같이 울었다. 그래도 혼나지 않았다.
사돈이라 차마 나무라지 못했을 것 같다. 당숙모가 장작개비 던진 언니 엉덩이를 대신 때려주었다.
우리 사돈과 우리 집은 새또랑 밭이 고랑 하나 사이를 두고 있었다.
기차가 산허리를 돌아 고개를 들이밀고 섬진강 철길을 지나갈 때면 새 또랑 밭을 같이 갔다.
우리들을 보자마자 대뜸 "날도 뜨겁그만 멋흐로 나왔냐? 땡빛에 다 오그라들게 생겼다. 집에 가면 깜밥 뭉쳐 놓은 것 있은 깨 그것 묵고 놀아라." 하고 쫓아 보냈다.
엄마 얼굴만 보고 와도 배가 불렀다.
지금 고향을 내려가면 세 친구가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자매처럼 지낸 친구가 동창과 결혼해서 옆 동네에 살고 있다.
그 친구랑 국민학교 때 수업 마치고 돌아오면 촌수로 고모가 되는 친구 집에서 같이 '빠끔 살이' 하고 놀았다.
그러나 지금은 고향을 내려가도 그 친구를 볼 수가 없다.
'소 부자'로 소문난 친구가 바빠서이다. 잠깐 다녀온 나도 바빠서 볼 수가 없다. 이래저래 서로 사느라 바쁘다.
친구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에구! 올해도 얼굴도 못 보고 지나가네.
아쉬움만 달래고 온다. 올해 아버지 기일에 가면 만나 볼 수 있으려나.
초등학교 다닐 때 나보다 훨씬 키 가 큰 남자 친구가 있다. 나는 키가 작았다.
농담 삼아 "니 키 좀 나 줄래"? 하고 물으면 "못 줘"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꼭 줄 수 있는데 안 주는 것처럼 말해서 같이 웃었다.
한 친구는 빨랫비누를 조각해서 사람도 만들어놓고 별것을 다 만들어 놓았다.
재주가 좋았다. 그 친구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만나지 못하고 올 때가 많지만 그래도 든든하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친구들 얼굴이 생각난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고모뻘 되는 친구랑 우리 집 앞에서 살았던 눈이 유난히 눈이 큰 친구도 있다. 별명이 '눈 보'였다. 현재 셋이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같이 밥 먹자는 약속만 계속하고 있다. 아직도 밥은 먹지 못했다.
몇 칠전 동창회를 앞두고 사돈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었다.
서로 안부 묻다가 사돈이 부정맥으로 쓰러져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드리다 쓰러져서 살았다고 한다.
친구들 아픈 소식 들을 때마다 나도 아프다.
나룻배 하나로 세상과 연결하며 살았던 우리들!
하루 두 번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미지의 세계를 그렸던 우리들!
나이는 들어도 같은 추억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지금쯤 우리들이 없어도 앞산에도 뒷산에도 개나리, 싸리 꽃, 진달래도 피어 흔들거리고 있겠지.
동네에서 우리 또래가 제일 많았던 시절
방앗간 옆에서 살았던 완식? 경수, 정수, 일택, 광식, 금자, 영숙, 신정섭( 이 친구는 가끔 페이스 북에서 안부 묻고 있다), 미자, 양심, 복순, 영미, 희숙, 미숙, 경호, 나를 제일 많이 놀러 먹었던 해경이, 시택, 만술, 재관, 용표? 복식, 이경, 이식, 이홍, 태원, 재천, 성택, 상노
다들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벌써 하늘나라에 간 친구들도 많네~~~
세월이 기차가 아닌 제트기로 달려가고 있는 친구들!
"고달국민학교 37회' 동창들이 잠시 '단양'에서 옛날로 돌아가 회포를 푼다고 한다.
우리 친구들 모두 모두 건강관리 잘하고 그날만큼은 주름살 펴지도록 신나게 웃길 바래.
못 간다 나는.
대신 이글로 친구들에게 안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