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 마을

by 고우니

‘수필의 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경주에 갔다. 서울팀과는 다음 날 모든 일정이 끝난 뒤 서울로 출발할 때 만나기로 하고 전주팀과 합류했다.

행사가 끝나고 양동마을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양동마을은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숙소로 가는 동안 날이 어두워졌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우선 칠흑같이 어두운 것에 놀랐다. 한참을 서 있는데도 좀처럼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때,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마을 사람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길 안내를 해 주었다. 발아래를 비춰주는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서 돌부리를 피해 가며 조심스레 걸었다. 우리 일행이 묵게 된 곳은 작은 기와집이었다. 창호지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자그마했지만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낯선 곳에서의 설렘, 팀원들과 오랜만에 만난 즐거움 때문에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하고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산속의 밤은 생각보다 시끄러워서 우리들의 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끊임없이 주거니 받거니 개구리 가족들이 개골거리고, 외양간에서는 소들의 속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중저음의 소리가 길게 이어지고, 날이 밝으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새벽이라고 빡빡 우겨대는 닭의 목청까지, 어둠 속의 양동마을은 생명의 소리들로 분주했다.


새벽녘에 잠이 깨어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진 뒤에 도착하는 바람에 보지 못했던 양동마을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순도순 모여있는 초가지붕들이 정겹다. 부드럽게 경사진 산자락을 따라 올라갔다. 아래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근사한 기와집이 아랫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새벽의 신선한 기운에 취해있다가 내려왔다.


아침 식사는 연잎 찰밥이다. 허기를 느꼈던 터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정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데 전주팀의 일정이 바뀌어 곧 출발할 거라 했다. 순간 난감했다. 서울 일행들이 오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있는데…. 하지만 어쩌랴. 떠나는 친구들에게 아쉬운 마음을 전하며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이제 혼자다. 어라, 예기치 않게 찾아온 혼자의 시간이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 듯 자유롭다. 가방을 걸쳐 메고 새벽에 갔던 곳의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연꽃이 예쁘게 피어있는 방죽을 지났다. 이십대로 보이는 외국인 여자애들 둘이서 자기네들 언어로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연꽃처럼 아름답다. 아니 연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그 젊음을 흉내라도 내보려는 듯 허리를 죽 펴고 걸었다. 낮은 언덕을 올라가니 대문 앞에 1800년대 가옥이란 팻말이 서 있는 기와집이 보였다. 1500년대에 지어졌다는 집도 있고. 몇백 년이란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는 가옥들이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다 엇비슷해 보였다. 무성의한 눈길을 보내다 말고 다시 걸었다.


시간에 맞춰 적당한 곳에서 발길을 돌려 내려왔다. 주차장 근처에서 기다리는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다 되어도 서울팀은 오지 않았다. 햇볕은 점점 따가워지고 이제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밤새 울어대던 동물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마을의 대낮은 적막하기만 하다. 자유롭다고 느꼈던 혼자의 시간이 지루해지면서 불안감이 스민다. ‘이곳에 오지 않고 가버렸나? 그렇다면 혼자 서울까지 가야 하는 건가?’ 인솔자에게 전화했다. 계획이 바뀌어서 다른 곳을 들러서 오느라 한 시간쯤 후에 도착할 거라 했다.

이런, 또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이미 두 번이나 마을을 둘러본 나는 다시 마을에 가는 것은 그만두고 마을 입구에 있는 조그마한 가게로 갔다. 얼음이 가득 든 시원한 커피를 사 들고 나왔다.


가게 옆, 수령이 몇백 년은 되었을 것 같은 정자나무 아래의 벤치에는 이미 마을 사람들 여럿이 앉아 있다. 강렬한 햇빛을 피할 곳은 거기밖에 없다. 잠시 머뭇거리다 그리로 가서 벤치 옆에 놓여있는 빈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들이 이방인인 나에게 스스럼없이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넨다. 어느새 사람들과 자연스레 섞였다. 넉살이 늘었다. 낯가림이 많은 성격 탓에, 예전엔 낯선 장소에 데려다 놓으면 그림처럼 앉아있더란 말을 듣곤 했는데, 나이가 주는 여유인가?

한 아저씨가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저기 저 파란 대문집이 우리 집이오. 민박집 운영하고 있다오. 난 이 마을 토박이인데 우리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이 마을에서 사셨다오. 아마 그 이전 조상님들도 사셨을걸요? 나도 젊을 땐 직장 따라 도시에서 살았는데 은퇴하니까 다시 들어오게 되더라고요. 지금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 애들도 그러지 않겠소?”

아! 500년이 넘는 마을이란, 500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말이었구나. 공간은 그대로여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계속 바뀌면서 그들 나름의 삶과 추억,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500년이란 시간이 와 닿지 않던 나는 그제야 무심히 들고 다녔던 마을의 관광 안내지를 펴서 꼼꼼히 읽었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지는 가옥들 사진을 보며 내가 보았던 실물들을 떠올렸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하나하나 특색이 있다. 과연 세계문화유산이 될 만한 귀한 보배였구나.


결국 사람이었나. 시간이란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인식되나 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을을 두 바퀴나 돌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또렷이 일었다. 과거는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현재 사람들 속에서 살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500년을 이어 살아가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들이 모여 이제 양동마을의 역사가 되었다. 세대를 넘고 넘어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수백 년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다. 드디어 도착했나 보다. 일행들과 같이 점심을 먹고 서울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넌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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