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했던 유럽 여행 도중, 파란 마을로 알려진 쉐프샤우엔에 가기 위해 모로코의 탕헤르로 가는 배를 탔다.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그것도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가다니! 그러나 그 거리는 생각보다 매우 가까워서 거대한 대륙과 대륙을 이동한다는 흥분감을 충분히 만끽하기도 전에 도착했다, 스페인 남부항구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쯤 뒤인 이른 저녁, 생애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땅을 밟은 순간이었다.
다음날 새벽, 확성기를 통해서 들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기도 시간인 듯한데 꽤 크게 들리는 것이 가까운 곳에 사원이 있나 보다. 사원에서 멀수록 호텔 값이 비싸다더니. 이곳이 이슬람 문화권인 모로코라는 게 실감이 난다. 뜻은 알 수 없지만 좋은 말이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는 멈췄다.
숙소 옥상에 차려준 모로코 전통 식사로 아침을 먹은 뒤 숙소를 나왔다. 캐리어를 다음 날 돌아와서 묵을 호텔에 맡겨두고 쉐프샤우엔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갔다. 시간을 넉넉히 잡고 길을 나선 것이 너무 서둘렀던지 한 시간이 넘게 남았다. 터미널은 그다지 크지 않아서 대기실에 의자가 몇 개 놓여있을 뿐이다. 버스 몇 대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잠시 후, 쉐프샤우엔에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그럴 리가.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이렇게 빨리 출발한다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표를 검사하고 있던 직원이 어서 타라며 우리에게 손짓한다. 오래 기다릴 일이 걱정이었는데 아무려면 어떠나.
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무심히 손에 들려있는 차표를 보았다. 아차! 스페인과 모로코는 한 시간의 시차가 있다. 하마터면 하루에 한 번 출발하는 버스를 놓칠 뻔했다. 이거 혹시, 알라신이 도운 건가?
쉐프샤우엔에 도착했을 때에는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의 거리가 꽤 되어 택시를 타야 했는데, 택시 기사 여럿이 버스에서 내리는 관광객들에게 다가가 흥정을 시도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외국인에게는 무조건 덤터기를 씌운다는데…. 이상한 곳에다 내려주고 가버리면 어쩌지? 낯선 곳,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괜한 걱정을 만들어냈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흥정을 마치고 택시를 탔다. 택시가 출발하고 얼마간 지나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사는 조금만 가면 숙소가 나올 거라며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웠다. 어떤 청년이 뛰어오더니 택시에서 내리려는 우리에게 숙소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아, 우리끼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딸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의 지도를 보며 말했다. 청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왔던 길을 다시 뛰어갔다.
숙소를 찾기 위해 우리는 언덕으로 나 있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놀랍게도 광장이 나왔다. 이곳엔 나름 큰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고 광장 끝에 보이는 길에는 차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아무래도 택시 기사가 우릴 너무 일찍 내려주었지 싶다.
광장을 지나 계단으로 되어있는 좁은 골목길을 올라갔다. 캐리어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드디어 숙소를 찾았다. 모로코의 특색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쉐프샤우엔 건물들 중 하나다. 숙소를 찾느라 고생했던 일은 한순간에 다 잊어버렸다.
체크인을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마을 산책을 나섰다. 쉐프샤우엔은 파란 마을이라고 불릴 만큼 건물들이 온통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유대인들이 스페인에서 밀려 내려와 이곳에서 자리 잡으면서 자신들의 건재함을 알리는 의미로 벽에 파란색 회칠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정작 유대인들은 다시 밀려나서 어디론가 떠나고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이슬람교인이다. 어디선가 밀려난 자들이 푸르게 칠한 도시, 그러나 정작 그들은 다시 또 다른 곳으로 밀려나 버린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슬픈 파란색이다.
굽이굽이 나 있는 작은 길가에는 여러 가지 상점들로 즐비했다. 이곳의 전통의복인 듯 어릴 적 그림책에서 봤던 요술 할머니처럼 뾰족한 모자가 달린 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투박하지만 편안한 디자인으로 이곳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물레로 천을 잣고, 가죽을 잘라 구두를 만들고, 급할 게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사람들은 파란 하늘과 높은 산자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 문득 정지용의 ‘향수’가 떠오른다. 고향을 그리는 아름다운 언어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지만 정작 정지용은 그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삶을 체험한 농부가 아니다. 귀향길에 새삼 눈에 띈 고향의 모습을 유학생의 시선으로 그렸던, 남달리 손이 하얀 것을 부끄러워한 지식인이었다. 지금 내가 잠시 스쳐 가는 여행자의 눈으로 이곳 사람들의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나 싶어 슬며시 미안해진다.
커다란 빵과 함께 나온 모로코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골목에 조그마한 과자 가게가 보였다. 쿠키 몇 개를 샀다. 손으로 대충 버무린 듯 세련미라고는 전혀 없는 투박한 모양새다. 한입에 쏙 넣으니 독특한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찬다. 모로코 맛이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마을을 제대로 보려면 내일은 비가 그쳐야 할 텐데…. 창밖을 내다보던 딸이 말했다.
“속상해. 순전히 엄마한테 예쁜 이 마을을 보여주려고 모로코에 온 건데.”
사실 이번 여행 중에 딸이 가장 많이 마음 쓴 곳이다. 치안이나 교통, 숙소 등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게 많아서 걱정하면서도 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무리해서 일정 조정을 했다.
“괜찮아. 문제 될 거 없어. 한땐 비 오는 날이 좋아서 비가 오면 일부러 밖에 나가 쏘다닌 적도 있는데 뭐. 예쁘다. 분위기도 있고.”
창밖엔 흠뻑 비에 적신 마을과 구름 걸린 푸른 산등성이가 점점 어둠에 젖어들고 있다.
날이 밝았다. 비는 어제보다 더욱 거세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으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전날 탕헤르에서도 옥상에서 식사했는데. 모로코의 숙소는 식사 장소를 옥상에다 마련하나 보다. 식당 디자인도 탕헤르와 비슷하다. 벽을 따라 길게 놓여있는 소파의 문양이 화려하다. 테이블 탁자가 낮아서 음식을 먹기에는 좀 불편했지만 여유롭게 기대앉아 분위기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기엔 좋았다.
옥상 식당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빗속에서도 아름다웠지만 산책은 어려울 듯하다. 몇 시간 후면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직원에게 조금 늦게 체크아웃해도 되는지 물었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체크아웃시간이 한 시간만 지나도 추가비용을 내거나 좀더 늦으면 하루치 숙박비를 내야 하는 등 엄격한 숙박 규정에 익숙한 생활에 젖어 있던 내가 무장해제 되었다. 허락은 받았지만 너무 오래 머물기 미안해서 한 시간쯤 뒤 체크아웃을 하려고 카운터에 갔다. 주인아저씨께 근처에 갈만한 카페가 있는지 물었다.
“우리 집 옥상 전망이 좋아요. 내 부인 차 끓이는 솜씨도 훌륭하고. 편히 쉬다가 시간 되면 가세요.”
아저씨는 우리와 같이 옥상으로 올라와서 부인이 차를 끓이는 것을 도와주더니 손수 찻주전자와 잔을 쟁반에 담아 가져왔다. 우리에게 차를 따라 준 뒤 자기 찻잔도 채우고는 생끗 웃으며 잔을 들어 보인다. 찻값은 받지 않을 거라는 몸짓인 듯하다. 잠시 같이 차를 마신 후 아저씨는 우리를 남겨둔 채 내려갔다.
이제 정말 떠나야 하는 시간이다. 옥상에서 내려왔다. 카운터에 사람이 없다. 친절했던 아저씨를 만나지 못하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 머뭇거리는데 직원이 내려왔다. 직원에게 대신 인사를 전했다.
숙소를 나와서 조금 걷는데 누군가 활짝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아, 숙소 주인아저씨다. 빗속에 모자를 깊게 둘러써서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반갑게 인사했다. 겨우 하룻밤 머문 숙소 주인과 손님의 만남일 뿐인데 다시 못 볼 가까운 친척하고의 이별이기라도 한 듯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결국 여행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건가 보다. 우린 다시 길을 걸었다.
버스를 타러 가는 동안 모로코에서 유명한 아르간 오일 가게에 들러 오일과 아이크림, 비누를 사고 비 때문에 하지 못한 거리 구경을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출발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 버스는 아직 도착해 있지 않았다. 대기실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일행들끼리 담소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다. 늦을까 봐 조급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버스는 예정 시간을 한참 넘어서야 출발했다.
배를 타고 대륙을 건너가 만난 마을, 쉐프샤우엔에 이별의 인사를 건넸다. 다시 또 눈에 담을 수 있을까? 우리가 건너온 바다 같기도 하고, 내내 내렸던 비 같기도 했던 파란색의 아름다운 마을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에 꾹꾹 눌러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