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을 배워온 교육원에서 열리는 연주회 날이다. 나를 포함한 아카데미 회원들이 한 학기 동안 배웠던 곡을 청중들 앞에서 선보이는, 내게는 꽤 중요한 행사다. 연주복과 악보가 든 가방을 잘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연주회장으로 들어서자 무대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는 연주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무대 아래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연주자들이 각자 막바지 연습을 하느라 여념 없다. 꼬마 아이들 둘이서 호기심 어린 눈길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제 엄마에게로 가서 재롱을 부린다. 아이들 엄마의 차림새를 보니, 오늘 연주자인 것 같다. 친정엄마인 듯한 할머니가 아이들을 챙겨주고 남편도 옆에서 같이 거들고 있다. 저 친구는 무슨 악기를 연주하나?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남편에게 뭐라 소곤대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열고 반주자에게 줄 악보를 꺼내려는데 이런, 악보가 하나밖에 없다. 따로 챙겨두었던 반주자용 악보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내 악보에 부랴부랴 반주에 필요한 메모를 써넣은 뒤 반주자에게 주었다. 손안에 악보가 없다 싶으니 왠지 불안하다. 분명히 가사도 잘 외워놨고 악보 볼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내 리허설 차례가 되어 무대에 올라가는데 갑자기 멀쩡하던 두 다리가 덜덜 떨린다. 또 긴장이다. 대학 입시도 아니고, 못한다고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데. 이제 연주회에는 이골이 날 만도 하련만 매번 ‘처음처럼’이다.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며 반주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피아노 전주가 흐르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사가 얼른 나오지 않아 몇 번을 얼버무리며 겨우 노래를 마쳤다. 리허설 무대는 완전 실패, 걱정이 태산이다.
사실 이번 연주는 곡을 정하는 것이 늦어져서 연습시간이 짧긴 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나온 수록곡인 이번 연주곡은 가사가 많은 데다가 비슷한 선율이 계속 흐르면서 감정선만 달라지는 곡이다. 가사를 다 외운 뒤에도 계속 헷갈리고 도무지 입에 붙지를 않았다. 한국 가곡은 아무래도 우리말이어서 외우기는 쉬웠는데, 대신 고음처리가 관건이다. 가사 걱정에 고음 걱정. 연주 준비를 하다 보면 항상 이런저런 걱정이 생기지만 이번 연주는 정말 걱정덩어리였다. 결국 마지막 레슨에서조차 완벽하게 가사를 붙여 노래하지 못하고 고음 처리도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마쳐야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한 학기 동안 배운 만큼 발전했고, 그만큼 보람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준비가 완벽하지 못했다 싶으니 아무래도 긴장이 더 되는 듯하다. 그래도 연주까지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가사를 외우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수도 없이 했는데.
연주가 시작되었다. 젊은 친구들도 있지만 내 또래의 연주자들이 많다. 보면대를 세우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는 것이 하나도 문제 되어 보이지 않는다. 악보를 보든 외워서 하든 다들 열심히 연습해서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 있다. 괜스레 마음고생 하지 말고 나도 악보 보고 할 걸. 불안해도 오늘은 악보가 없어서 그냥 해야 한다. 아니, 악보가 있었어도 악보를 보고 하기엔 내가 너무나 열심히 가사를 외우지 않았나. 나도 내년부터는 처음부터 아예 보면대 세우고 할 생각해야겠다. 보는 사람 불안하게 위태롭게 노래하는 것보다야 악보 보면서 하는 게 낫지. 사실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것이 감성 표현을 하는데 더 좋을 수밖에 없다. 그게 관객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그동안의 내 생각이었고, 나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이 인정, 현실 인정이다.
아까 보았던 아이들 엄마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저 친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연주를 하고 있다. 손끝에서 나오는 터치가 아주 맑고 깔끔하다. 좋은 선생에게 잘 배운 솜씨다. 다음에 이어진 앙상블은 교수와 제자들이 함께 하는 연주다, 사제 간에 눈빛을 교환해 가며 연주하는 모습이 참 다정스럽다. 그 뒤로 플롯과 첼로, 바이올린 등 여러 연주자들의 연주가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 연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연주를 들으면서도 내 연주 걱정에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가사를 외웠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리허설 무대보다 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긴장해서 정신이 없는데 다행스럽게도 가사가 입에서 잘 나가고 있다. 관람석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딸이 첫 노래가 끝날 즈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인다. 이제껏 내 연주는 다 와서 봐주고 칭찬해 주는 고마운 딸이다.
고음 걱정이던 한국 가곡도 무난하게 마쳤다. 사실 긴장하며 하는 연주가 잘했을 리 없지만 가사 틀리지 않고 음 이탈 안 했으면 됐지. 이만하면 만족이다. 아마추어의 특권이다.
연주회가 끝났다. 긴장감은 어느새 다 사라지고 그간 준비하며 애썼던 생각이 스친다. 무대 서는 건 정말 싫고 힘이 드는데, 고추장 퍼먹으며 운다고 난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며 사나. 편하게 살아도 누가 뭐랄 사람 없는데.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기 식구들이나 친구들을 챙기며 사진을 찍고 활짝 웃고 있다. 열심히 준비한 수고를 귀하게 여겨주고 약간의 서투름도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다. 나도 사람들 틈에서 딸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멋진 우리 엄마, 배고프겠다. 저녁 먹으러 가자. 뭐 먹을까?”
“음, 맛난 거 먹자.”
나는 딸의 손을 꼭 잡고 연주회장을 나섰다.
그나저나, 내년에도 악보 없이 연주해야 할까?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미리부터 하는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