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사한 아파트 길 건너에 수천 세대의 새 아파트가 또 들어섰다.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도 뒤따라 생겼다. 아파트 건물들만큼이나 새로 생긴 초등학교도 외양이 말쑥하다.
공사가 마무리된 이후의 어느 날, 아래층 수진이 엄마와 집으로 걸어오는 중이었다. 수진이는 아파트 근처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네 살짜리 아이다. 새 초등학교 앞을 막 지나는데 수업이 끝난 시간이었는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우루루 몰려나오고 있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며 왁자지껄한데도, 오랜만에 듣는 아이들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한다. 마중 나와 있던 엄마들이 밝은 표정을 하고 자기 아이를 데리고 가는 모습들도 보였다.
“수진이도 크면 이 학교에 보내면 되겠다.”
“글쎄요.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니 왜?”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내게 수진이 엄마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새 아파트 주민들이 반대해서 올해는 우리 아파트 아이들이 입학하지 못했대요. 분위기 버린다나요? 게다가 그 아파트 단지 내에 일부 임대 아파트도 있는 모양인데 그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도 못 다니게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네요.”
부자 동네에서 근처의 낙후된 집에 사는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을 서로 어울리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들을 TV에서 본 적도 있고 들은 적도 있는 것 같다. 심지어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학교 가는 길에 자기네 아파트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쳤다는 일도 있었지 싶다. 그런 이야기들이 나와는 먼 일로 알았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전주에서 편하게 아이들을 다 키우고 온 내가 이제 와서 자존심이 상해야 하나? 순간 복잡한 마음이 되어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수진이 엄마는 내 마음을 무관심으로 읽었나 보다.
“아이들을 다 키운 어른들은 관심이 없어 잘 모르시겠지만 우린 엄청 자존심이 상했어요.”
그리고선 수진 엄마는 잠시 입속에 어떤 말을 담고 있는 듯하더니 기어이 툭, 뱉는다.
“어차피 똑같이 강남에 가지도 못하면서…,”
나는 수진 엄마가 혼잣말인 듯 흘리는 말 한마디에 결국 웃고 말았다.
“그러게나 말이야.”
내가 지난 여름에 이사 와서 살게 된 지금의 아파트는 지어진 지 십육 년이 되었다. 사실 새 아파트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리를 하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막상 이사 한 뒤 망설였던 일이 무색할 만큼 이 아파트가 마음에 들었다. 인테리어도 새로 한 집이라 나름 쾌적했고, 이전에 비해 좀더 넓은 집으로 올 수 있었으니까.
서울살이 5년차. 재계약할 때마다 무섭게 오르는 전세금을 마련하기 바빴다. 그래도 어쨌건 나는 아직 주소상 ‘서울특별시민’이다. 전세금 마련을 하면서 불편한 마음에 “전주 가버려? 경기도로 갈까?”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사실 나는 언제든 다시 고향인 전주로 가버리면 그만인 사람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서울을 아예 떠나지도 못하고, 높은 집값으로 인해 변방으로 밀려나 서울로 매일 힘겹게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고단함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몇몇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서울부심(서울 시민이라는 자부심)’이 낯설었다. 뼛속까지 ‘시골쥐’인 내가 보기에 ‘서울쥐’란 영락없이 아등바등 애쓰고 사는 것일 뿐인데 웬 자부심일까 싶었다. 서울에서 밀려나지 않고 있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마음이었을까? 게다가 어떤 사람들의 강남을 향한 부러움 혹은 열등감은 더욱 낯설었다. 밀려날 걱정을 벗고 서울에 직장과 집을 마련한 사람들은, 그 이후엔 다시 서울 내에서도 더 좋은 집을 갖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곳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것을 넘어 그 부러움에 대한 자기 위안으로 자기만큼 갖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가난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더 가진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니까.
아파트 정문이 보이는 길목에 들어섰다. 길 양쪽으로 단풍이 깊게 진 아름드리나무들이 무성한 나뭇가지들로 아치형 터널을 이루고 있다. 심란해하면서 걷고 있던 수진이 엄마의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우리 아파트 진짜 예뻐요. 오래된 아파트의 장점이에요. 그렇죠? 전 우리 아파트가 정말 맘에 들어요. 앞쪽 작은 평수에는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살고 있어요. 이쪽으로는 부모님 세대들이 주로 계시는데 앞쪽에 자식들을 분가시키고 오가면서 사는 집이 많더라구요. 한 단지 내에 부모님들이랑 살면서 서로 챙기며 사는 게 얼마나 보기 좋아요? 서울 같지 않은 따뜻함이 있는 곳이에요.”
“그래, 그런 것 같더라. 나도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우리 아파트와 아파트 사람들이 정이 들더라고.”
밝게 웃는 수진이 엄마와 헤어져 집으로 들어왔다.
잠깐 나갔다 온 것인데도 피곤하다. 소파에 몸을 뉘이니 금세 피로가 풀린다. 역시 가장 편안한 공간은 내 집인가 보다. 누구나 으스댈 법한 강남 한복판 호화 아파트도 아니고, 엄밀히는 내 집이라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나의 집. 날씨처럼 사람의 마음도 쌀쌀해지는 요즈음이지만 때론 보이는 집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집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 싶다.
결국 나 자신을 지켜주는 건, 차가운 콘크리트로 지은 집이 아닌 마음의 집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