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하거나 글을 쓰는 것. 그 모든 것은 그저 내가 좋자고 하는 일이다. 혹여 나 좋자고 하는 일에 다른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는 않을까 싶어서 연주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굳이 알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 관객이 단 한 명도 없는 연주는 너무 삭막할 테니 늘 애꿎은 딸에게만 관객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다행히 딸은 어려서부터 내가 하는 모든 연주를 거의 다 다니면서도 귀찮은 기색 한 번 없이, 늘 기뻐해 주고 자랑스러워해 준다.
음악에 비하면 글쓰기는 혼자서 조용히 노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내 글이 실린 책이 나왔을 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연주할 때처럼 딸에게만 알릴 수도 없는 일이다. 내 책을 귀하게 여겨줄 사람은 누구일지, 책 속에 나오는 나의 일상, 나의 이야기들을 편견 없이 봐줄 사람은 또 누구일지 고심하며 책을 주게 된다.
문제작가로 선정된 후, 내 글이 실린 책이 한가득 집으로 온 뒤 고민에 빠졌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책이 너무 많은 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내가 속해있는 몇 개의 모임 사람들에게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알리고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다. 다른 모임 구성원들은 대부분 곧바로 주소를 보내 주었는데, 의외로 내가 아끼는 친한 친구들이 속한 모임에서는 오로지 경미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주소를 보내왔다. 다른 친구들은 부럽다거나 내가 친구여서 자랑스럽다거나 하는 말 인사만 하고 정작 주소는 보내지 않았다. 뭐지? 은근히 서운해진다. 그러다 애써 생각을 고쳐 본다. 나 즐겁자고 하는 일에 사람들이 무신경하다고 서운해하지 말자는 게 평소의 내 생각이 아니었던가. 예전에 책을 많이 읽던 사람들도 눈이 어른거려서 이제는 책을 보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그런 이유일 수도 있겠다. 주소를 보내준 경미가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가지고 있던 책 한 권을 더 넣고 잘 포장해서 경미에게 보냈다.
며칠 후, 경미에게서 문자가 왔다.
“책 잘 받았어. 우리가 만난 지 삼십 년이 넘는데도 몰랐던 너를 글을 통해서 새삼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고마워서 밥이라도 한번 사고 싶은데 시간 언제 가능하니?”
그렇게 경미와 시간 약속을 했다.
경미와 만나서 이런저런 살아오던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데 경미가 A4용지 한 장을 내게 내민다.
“그동안 네가 쓴 글, 다 찾아서 읽었어. 인터넷 카페에 있더라. 혹시 지워질까 봐 복사해서 파일에 보관해 뒀지. 내가 가지고 있는 네 글 제목들이야. 볼래? 빠진 거 없지?”
나는 깜짝 놀라서 종이를 받았다. 내가 전주에서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당시의 선생님은 학생들의 글을 카페에 전부 올리셨다. 한참 뒤에 그 사실을 알고 당황스러웠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나조차도 잊고 있던 글들을 다 찾아 읽고 간직까지 하고 있었단다.
“고마워라. 초기작이라 많이 모자란데…. 뭐 지금도 별반 잘 쓰지는 못해서 허덕거리고 맨날 죽는소리하고…. 게다가 말만 글 쓰러 다닌다지 막상 쓰지도 않아서 수업엔 늘 빈손이고….”
한참을 주절거리고 있는 나를 경미는 딱하다는 듯 바라본다.
“글 잘 쓴다는 게 뭔데?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거? 난 글은 쓰지 못하지만 책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책을 참 많이 읽었어. 그래서 글 읽을 줄은 좀 안다고 생각해. 네 글이 나에게 공감되고 따뜻하고, 그래서 내 마음에 위로가 되고 그러더라.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더 이상 뭐가 필요한데? 내가 네 글을 간직한 게 그냥 너여서? 아니, 네 글이 좋아서야.”
나는 머쓱해졌다. 귀한 칭찬이다. 잘 간직해 두었다가 글을 쓰면서 문득 퍽퍽함이 찾아올 때 꺼내서 힘을 얻을 소중한 말이다. 경미는 책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뭐라도 들고 오고 싶었다고 다이어리를 내게 건넸다.
글 쓴다고 덤빈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그동안 글을 못 쓴다는 말은 늘 달고 살면서도 어떤 글이 잘 쓴 글인지,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다른 사람들 글 속의 멋진 문장에 감탄하며 그런 글 쓸 능력이 되지 않는 것에 움츠러들기만 했다. 경미의 말에, 대단한 글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나의 경험과 생각이 깃든, 딱 ‘나만큼의 글’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지는 게 은근히 힘이 난다. 그래, 대단한 작가가 아니면 어떤가. 전문 연주가는 아니어도 나를 응원해 주는 딸 하나로 충분했듯, 경미의 격려로 나는 오늘 천군을 얻은 듯 힘이 솟았다.
집에 돌아와 상자 속에 들어있는 다이어리를 꺼냈다. 파란색의 표지가 예쁘다. 이걸 사기 위해 이것저것 만져보며 골랐을 마음이 고맙다. 책 두 권 선물에 밥 사주고 용기 주고 다이어리 선물까지. 글 쓰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