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주변은 고요해졌고 더 이상 쫓아오는 사람들도 없었어요. 선선히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늑대의 털을 지나 소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스쳤어요. 늑대의 털이 자꾸만 소녀의 코끝을 간질이자 소녀는 웃음이 나왔어요. 잠옷을 입고 있어서 조금 쌀쌀했지만 늑대의 등이 어찌나 따뜻한지 마치 털 옷을 입은 것 같았어요. 늑대는 말없이 터벅터벅 걸었어요.
소녀가 늑대에게 말했어요.
"우리 이제 어떡하지?"
늑대는 잠시 생각에 잠겼어요. 마을로 다시 돌아가면 소녀는 다시 마을 터주신에게 재물로 바쳐질 것이 뻔한 일이었어요. 그 마을의 터주신은 해마다 한 명씩 어린 소녀의 피와 살을 먹어야 마을을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이 유지된다고 늙은 영매를 통해 말했어요. 소녀의 부모도 친척들도 모두가 소녀를 재물로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절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고민에 빠진 그때 아주 어릴 적 할머니가 동화처럼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마을에서 동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타락해 버린 터주신의 눈이 닿지 않는 신성한 마을이 나온다고, 그 마을엔 유니콘들이 사람들을 피해 숨어 살고 있다고 했어요. 그들이 소녀와 늑대를 받아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은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늑대는 머나먼 길을 떠날 굳은 결심을 하고 소녀에게 말했어요.
"도망가자. 아주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