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소녀는 서로 부둥켜안고 의지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악어들은 점점 곰과 소녀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굶주린 악어들은 소녀가 휘청거리다가 물에 빠지기만을 기다리는 듯 입을 벌렸다.
"나 자꾸만 졸려…… 이러면 안 되는데……."
소녀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며칠 동안 숲을 헤매었던 탓에 여린 몸이 버티질 못 했던 것이다. 소녀의 몸이 스르륵 풀릴 때마다 곰은 더 세게 소녀를 품에 안았다. 악어들은 몇 시간 동안 한 마리도 떠나지 않고 이 둘이 무너지기만을 기다렸다.
곰도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품에 안겨 잠든 소녀의 숨소리가 어쩐지 거칠게 느껴졌다. 그러다 소녀의 발이 조금이라도 나무 기둥을 벗어날 때면 악어들은 신이 나서 나무 위까지 올라올 힘이라도 생기는 것 같았다.
소녀는 언제나 곰의 편이었다. 곰이 소녀의 부모에게 구박을 당할 땐 옆에서 외롭지 않게 꼭 안아주고, 마을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할 때는 두 팔 벌려 대신 피 흘리며 맞아주고, 모두가 곰을 쫓아내라고 횃불을 들고 와서 으름장을 놓을 때는 차라리 같이 나가겠다며 그렇게 함께 도망쳤다.
그저 둘이 함께 달을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을 뿐이었다. 이렇게 물이 빨리 차오를 줄 몰랐다. 소녀와 곰에게 달을 함께 보는 것도 사치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둘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서글펐다.
그렇게 곰의 몸도 힘이 점점 풀려갈 때쯤 곰을 안고 있던 소녀의 팔이 툭 하고 힘이 풀려 내려갔다. 곰은 냄새로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을 안아주던 포근한 소녀의 향기는 이곳에 없었다. 곰은 소녀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그동안 나와 함께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덕분에 사랑을 알게 되어 고맙다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곰은 울지 않았다. 소녀는 죽었지만 여전히 소녀를 지켜야 했다. 그래서 소녀의 옷을 벗기고 조금씩 조금씩 입에 넣어 삼키기 시작했다. 소녀의 육신을 악어들로부터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악어는 소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더욱 소녀를 먹을 자격이 없었다. 손을 먹으며 항상 다정하게 자신을 쓰다듬어줬던 부드러운 손길을 떠올렸다. 발을 먹으며 넓은 들판을 함께 뛰어놀던 그날을 떠올렸다. 입술을 먹으며 그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떠올렸다.
그렇게 곰은 눈물대신 소녀를 삼켰다.
어느 마을 강가에 상처투성이의 곰의 사체가 떠내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떠내려온 곰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악어떼에게 끔찍하게 훼손된 곰을 보고는 여자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렸고 남자들도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한 남자가 소리쳤다.
"저기 사람 옷이 있어요!"
소녀의 분홍색 원피스가 물에 젖고 흙이 잔뜩 묻은 채로 곰과 함께 누워 있었다. 곰을 의심한 마을 사람들은 곰의 배를 갈랐고 소화도 채 되지 않은 소녀의 조각난 사체가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가 혼비백산하여 나자빠졌다. 결국 곰의 사체를 불에 태우며 마을의 소란이 잠재워졌다.
그 뒤로 가끔씩 달이 환한 밤이면 강가에서 곰과 어린 소녀가 노래를 부르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거나 웃음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나타나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