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태어난 목적은 그게 아니야
늘 내가 세운 계획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힘없이 무너졌다.
계획이 무너질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비난했다.
왜 이거 하나도 지키지 못하냐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고.
자책은 자기 비하지만 나에겐 자기 위로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에게 벌을 줌으로써 그나마 인간으로서 할 도리를 다 한 것 같은 느낌.
나는 계획을 절대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니
내가 나를 믿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믿어달라 할 수도 없었다.
마치 뿌리 없는 나무가 된 듯 나는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휘청거렸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강풍이 불더라도 믿을 구석이 있지만
나는 어쩌다 강풍이 불어오면 잡고 의지할 곳이 없어서
그냥 무너져 내렸다.
바다 한 가운에 정처 없이 떠다니는 통나무가 된 것 같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할까?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계획을 지킬 능력을 애초에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태초부터 ADHD는 무언가 정리하고 계획하는 용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이 우리를 만드신 의도는 모험과 확장이다.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에 들어간 앨리스처럼 우리는 토끼를 따라가는 것이 맞다.
그래야 행복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물론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 맞는 인간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을 싫어하고
약속을 지키는 데 큰 어려움이 있으며
정리와 분류에 취약하고
계획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
신은 결코 쓸모없는 것을 만들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설계되어 태어났을까?
ADHD는 흥미로운 것을 할 때 괴물과도 같은 집중력을 발휘한다.
나는 실제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10시간을 몰입해도 지치지 않을 때가 많고
오히려 더 각성이 되고 몸에 에너지가 생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틀에 박히지 않은 창의적인 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창의력이야말로 ADHD 동지들에게 강력한 무기이다.
우리에게 세상의 틀은 감옥과 같은 느낌을 주지만
신은 감사하게도 틀에서 나올 열쇠를 우리 손에 쥐어 주셨다.
이것으로 나는 보통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의 몇 배를 벌고 있다.
ADHD는 즉흥적이다. 그때그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즉시
실행에 옮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DNA를 가지고 있다.
아이디어 특성상 순간 반짝하고 사라질 때가 많은데
ADHD는 뒷날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뛰어든다.
모험을 시작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신은 우리를 모험가로 만드셨다.
우리의 쓰임새는 거기에 있다.
즉흥 여행을 하다 보면 뜻밖에 만나는 좋은 사람, 예쁜 맛집, 무지개, 귀여운 강아지 등
계획대로 했더라면 절대 겪지 못할 행운을 경험할 수 있다.
그게 우리 ADHD들의 인생이다.
모험, 뜻밖의 행운, 거기에서 오는 성취감을 경험하러 이 세상에 왔다.
우리는 이 목적을 아주 잘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이라는 틀은 곧 감옥으로 바뀔 것이요,
우리는 죄수가 되어 움츠린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저 우리는 우리의 흥미와 재미를 따라 흘러가면 된다.
재미와 흥미 따라 살다 보면 인생이 망할 것 같은 거대한 집단 무의식이
우리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잘 풀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빛이 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구석에 움츠린 채 세상이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 ADHD 동지여,
내일 세상이 망해도 좋아하는 거 하고 삽시다!!
저도 앞뒤 안 가리고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사느라 사실 텅장으로 살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거 해야 마음도 든든하고 행복하고,
또 행복하니 더 좋은 일들이 자꾸만 끌어당겨지고 그렇습디다.
빛을 쫓는 나방처럼
행복을 좇아갑시다.
설령 그것이 종말일지라도 행복한 종말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