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염(光焰): 얼굴을 맑게 하고 빛나게 하기 위해 붙이는 미용용 전통 팩
평안 부윤네 여인들이 얼굴 가꾸는 걸 좋아해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만물상을 자주 들인다는 말을 들었다. 평양 기생이 천하일색이라더니 부윤도 그 기생들의 치마폭에 벗어나지 못해 몇은 한양까지 데리고 왔다고 한다.
연지나 미묵, 분 같은 보통 화장품으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할 것 같아 지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 광염(光焰)이었다. 얼굴에 붙이고 이각(二刻)정도 뒤에 떼어내면 얼굴이 반질반질한 것이 분도 더 잘 먹어 곱게 보였다.
며칠 동안 비단과 한지, 면포와 목화솜에 여러 기름과 식물의 가루를 섞어 광염(光焰)을 만들고 효능을 확인하느라 눈 아래 그늘이 광대까지 내려왔다. 비싼 진주까지 구해다 갈아 넣었다.
지우는 만든 것을 들고 유진의 거처로 갔다.
“영감님. 강단이입니다.”
“들어오너라.”
지우는 면포에 한지를 덧대어 눈 코 입을 튼 것과 아주까리 열매 기름에 꿀, 율무씨, 진주 가루, 그 외 피부에 좋다는 건 다 때려 넣은 것을 들고 와 유진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네가 말한 광염(光焰)이라는 것이냐?”
“네. 영감님. 면포와 한지를 얼굴에 붙인 뒤에 제가 만든 이것을 위에 덧바릅니다. 이각(二刻, 30분)정도 있다가 떼어낸 뒤에 쌀뜨물로 세수를 하면 얼굴이 맨들하고 뽀얗게 보이지요. 여러 가지를 해보았는데 이것이 가장 배합이 적합하였습니다. 부작용도 없고요.”
지우가 시험 삼아 얼굴에 면포를 대고 그 위에 바르는 시늉을 하였다. 유진은 그 모습을 유심히 보며 말했다.
“보통 여염집 아낙이 했다면 해괴하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네가 그렇게 대고 있으니 훨씬 보기가 좋구나.”
“허허허. 영감님은 농담도 잘하십니다. 아니 진담을 아주 격의 없이 말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우는 면포를 얼굴에서 떼어내고 이를 악물며 웃음기 없이 말했다.
“네 얼굴을 보니 효과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유진은 손을 들어 자신의 턱을 문질렀다.
‘저 눈두덩이나 주근깨는 어찌 만든 것일까? 얼굴이 다를 수는 있어도 체취와 체격, 고유한 음색까지는 바꾸기 어렵다. 그래도 얼굴이 감쪽같으니 같은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없겠지.’
“보기에는 그래 보여도 만져보시면 맨들맨들 합니다.”
지우의 새초롬한 눈짓에 유진은 손을 뻗어 큰 손으로 지우의 뺨을 감쌌다. 지우는 눈을 연신 껌뻑이다 유진의 손을 뿌리치고는 언성을 높였다.
“영감님! 저 좋아하십니까? 그새 저에게 반하기라도 하신 거여요? 천 것이라 쉽게 생각하셨다면 오산이십니다. 이리 손을 대지 마십시오.”
“만져보라고 하지 않았느냐~. 맨들맨들 할 거라고. 방금 볼이 많이 뜨거워진 것 같은데, 원하면 내 첩으로 들어오던지. 날 구해 주었으니 그 정도는 얼마든지 나에게 구해도 된다.”
“미.”
“미친?”
“제가 어찌. 미안하게도 죄송하지만 딱 부러지게 단호하게 말씀드리자면 저에게 과분한 일이니 말씀을 거두어주십시오.”
“그렇구나. 신유진의 첩이라는 간판이 있으면 네가 돈 벌기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해서 한 말이다.”
‘손에 묻어나는 것도 없는데 어찌 된 것일까?’
유진은 제 손바닥을 뒤집어가며 바라봤다.
지우는 손을 들어 제 입을 막으며 놀란 눈으로 유진을 바라봤다.
“오. 그렇게 깊은 뜻이. 그러고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지금은 더 시급한 문제가 있으니. 그것을 들고 평양 부윤의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란 말이 아니더냐? 그런데 이것이 좋은 줄을 어찌 알고 너를 찾겠느냐?”
“다 생각이 있습니다.”
이틀쯤 지났을까.
평양 부윤댁에서 얼굴을 하얗게 만들어 준다는 데 특효가 있다는 광염(光焰)을 파는 자, 효원각의 강단이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지우는 개천을 통해서 광염을 그의 아내인 마순에게 전해주었다. 개천은 효원각의 강단이가 만든 것인데 곧 효원각에서 비싼 값에 팔려 나갈 것이나 친분이 있어 특별히 얻어 왔다 말했다. 새신부에게 잘 보이려 귀한 것을 얻어다 주는 척을 하였다.
효과가 좋으면 대감님이 요새 매일 찾으시는 작은 마님, 아실에게도 하나 줘보라 하였다. 마순에게 비녀라도 하나 떨어지지 않겠냐고 넌지시 말했다.
작은 마님 아실의 얼굴에서 광이 나자 아실의 동무인 월도각 기생 춘영이와 영도가 너도 나도 하고 싶다고 난리가 났고 그 소문은 잔잔하면서도 빠르게 부윤댁으로 흘러 들어갔다.
평양 부윤의 본처는 딸이 대제학 집안과 혼인을 약조하고 얼마 못 가 시름시름 앓자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한양 입성을 앞두고 딸에게 참으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강단이를 수소문해 집으로 불렀다.
지우는 그간 효원각 객주와 끝명이에게 만들어 주었던 화장품들과 광염(光焰)을 들고 부윤댁으로 갔다. 설향에게 효원각에도 기생을 들이면 이것들로 광나게 해서 돈을 더 벌 수 있을 거라고 하였지만 설향은 몸 장사는 안 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기예 장사한다고 시작해도 결국에는 몸 장사 된다고.
집 후문 앞에서 지우가 문을 두드리자 집사가 나와보았다.
“효원각 강단이입니다.”
집사는 콧수염을 한 번 쓰다듬더니 강단이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네가 못난이 강단이구나. 그런데도 손재주가 좋아 여기저기서 찾는다고 하니 네 살길을 제대로 찾은 게지. 들어오거라. 마님께서 기다리신다.”
지우는 집사를 따라서 안채로 들어섰다.
“마님. 강단이라는 계집을 데리고 왔습니다.”
“들라 하여라.”
집사가 마루에 올라 문을 열자 살집이 두툼하고 인상 좋은 마님이 앉아있었다. 저 인상으로 자기 밑에 있는 남편의 다섯 첩들을 후려 다스린다는 게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마님은 집사를 돌아보지도 않고 자수를 두며 말했다.
“자네는 나가보게.”
집사가 마당을 가로질러 나가자 지우는 마루로 올라가 머리에 이고 있던 소쿠리를 내려놓았다.
“마님. 강단이라고 하옵니다. 이렇게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그제야 마님은 지우를 돌아보았다.
“네가 효원각에서 이화주도 만들고 얼굴에 생기를 돌게 하는 면포도 만드는 아이냐?”
“네. 그렇습니다.”
“재주가 남다르구나. 네게 부탁할 것이 있다.”
지우가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님의 안색이 사뭇 어두웠다.
“우리 집 아이가 입맛이 없고 영 힘을 못 쓰는구나. 혹여 네가 도와줄 수 있겠느냐? 천생 여인인 아이이니 네가 광염(光焰)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해주면 좋아할 듯싶어 내가 널 불렀다. 혼례를 앞두고 있기도 하고.”
“별거 없는 재주로 아씨가 생기를 얻는다면 영광입지요. 제가 말재간이 있어 양반네 아씨들은 누구든 저를 말동무로 좋아하십니다.”
지우는 안내를 받아 유진과 혼례를 앞두고 있다는 아씨의 방으로 갔다. 아씨는 분홍 저고리에 연두색 치마를 곱게 입고 이불 위에 누워있었다.
볼은 푹 꺼지고 옅은 눈썹은 미묵으로 그리지 않아 더욱 창백해 보였다. 아씨의 수종을 드는 하녀가 말했다.
“아씨~. 얼굴을 곱게 하는 면포를 파는 자라고 합니다. 면포에 약재를 발라 얼굴을 밝게 한다고 합니다. 아씨. 일어나실 수 있겠습니까?”
하녀의 말을 들은 하영의 눈가에 눈물이 주룩하고 흘렀다.
“내가 이리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누워있는데 그런 걸 해서 무엇하겠느냐? 제때 혼례나 치를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인데.”
하영은 괴로워할 힘도 없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분과 혼인을 약조한 여인들은 다 아프다 하지 않느냐? 영상의 손녀는 죽었고, 공주 자가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었다. 나도 그리될 테다. 곧 죽을 테지. 한양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이렇게 되었는데도 아버님은 이 혼인을 무를 생각을 않으신다.”
하영이 흐느끼자 하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라 하며 하영과 밖에 있는 지우를 번갈아 돌아보았다. 지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말했다.
“아씨~. 제가 만든 광염(光焰)은 마음이 진정되는 데도 효험이 있습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보시면 어떨런지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큰 마님께서 아씨에게 즐거움을 주라 하셨습니다.”
하영의 귀에 지우의 말이 들어왔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어머니.”
하영은 곱게 단장하여 여동생들과 평양 시장을 거닐며 수다를 떨고, 을밀대에 올라 동무들과 봄놀이를 즐기던 여인이었다. 쨍한 여름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무어라도 하다 보면 희망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겠는가?
첩들과 첩들의 자식들이 일말의 사특한 마음을 먹지 않도록 집안을 다스리며 하영을 보호해 온 어미의 바람을 쉽게 저버릴 수는 없다. 다시 평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도 될까? 평양. 친구들의 꺄룩대며 웃는 소리가 하영의 귓가에 맴돌았다.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이전처럼 어여쁘고 건강했으면.
“아씨.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보셔요. 제가 얼굴빛을 맑게 하는 음료도 만들어 왔나이다.”
지우는 흑두루미가 새겨진 주전자를 들어 보였다.
“어이~! 못난이. 네가 만든 것을 먹고 우리 아씨가 더 아프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하녀는 하영의 심기가 불편해질까 안절부절못했다. 안 그래도 요새 잔뜩 예민해져 들쑥날쑥한 성질머리 받아내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말이다.
하영은 주전자를 슬쩍 보더니 손을 살짝 들어 하녀에게 괜찮음을 알렸다.
“그만 됐다. 우덕아. 저기. 강단이라 했느냐? 해보겠다. 네가 주는 것도 마셔볼 테다. 먹고 죽으나 안 먹고 죽으나 매한가지 않겠느냐?”
지우는 납작 엎드려 바닥에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씨. 이것도 비법이면 비법인지라 제가 이걸로 밥을 먹고 사니 괜찮으시다면 하녀를 물리라 해주시겠습니까?”
“이것이! 아씨가 한 번 봐주니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구나!”
하영은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나려 힘을 썼다.
“애기씨! 애기씨~.”
하녀 우덕은 하영에게 가서 등을 받쳐주며 일으켜 세워주었다.
“됐다. 이 아이의 밥벌이라 하지 않느냐? 한 푼 두 푼 모아 벌어 가족들을 먹이고도 일이 생기면 금방 또 굶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보통의 백성이다. 뭐라고 하지 말아라.”
지우는 눈을 들어 하영을 보았다. 이마와 턱이 튀어나오지 않아 차분해 보이고 말하는 것이 인자한 것이 유진의 짝으로 알맞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