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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혼을 했다.

콜센터 스토리#3

by 둔꿈

"남편이 매일 때려요. 다 늙어서 추한 꼴 애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참고 또 참았다고요. 결국 아들 집으로 도망까지 나왔어요. 도대체 연금 분할은 언제 되는 거죠?

제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그전에 제가 죽는 건 아닐까요?"


'20년 6월 연금 분할 법 시행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이혼 때문에 콜센터로 연락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사연들도 하나같이 참 처절할 때가 많았다.

남편과 싸우고 외지에 있는 딸에게 다녀와보니 집 현관 도어록 비밀번호가 변경되어 있다며, 이러니 이혼을 하지 안 하겠냐고 우시는 분의 사연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들을 뿐 그들을 도울 수 없었다.

"아직 국회에서 법률안 통과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버티고 기다리셔야 해요."


사실 콜센터에 근무하기 전에는 '그냥 이혼하지 않고 별거부부로 버티고 살다가 남편이 먼저 사망할 경우 유족연금을 무려 60~70%까지 받는데, 왜 에너지 낭비를 해가며 이혼을 할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얼마나 현실을 몰랐었던 사람인지 안다.


어떤 남편은 매일 때린다. 그리고 식사를 제대로 차려주지 않으면 생활비에서 만원씩을 제하는 남편도 있다. 그 정도면 양반인가? 아예 생활비 자체를 주지 않고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는 남편도 있었다. 여자들은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남편과의 이혼을 간절히 원했다.


다행히 연금 분할이 이루어진 뒤로는 더 이상 그녀들의 참혹한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여전히 분할 비율에 대한 상담은 진행하지만, 그 정도는 과거에 비하면 정말 가벼운 것이 아니겠는가?


몇 년에 걸친 '이혼 분할'에 대한 이슈와 그 변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법의 제정이 갖는 힘이다.

내 생각 같아서는 때리거나 생활비를 주지 않는 그 남편들 마음속의 그 까만 어떤 것을 포크레인으로 파버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100%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법률이 나를 대신해 그녀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비록 수많은 이혼 가정이 탄생했을지는 몰라도 여자들은 삶다운 삶을 찾아 떠날 수 있었다.


법률이 닿기 전에 평화가 온다면 좋지만,

그럴 수 없다면 법률이란 어떻게 삶에 작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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