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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전역식

콜센터 스토리#1

by 둔꿈

"국군 포로였던 아버지 유해를 드디어 모셔왔어요.

이제 전역 처리 해주세요."


숨어 있던 역사의 상처가 그의 한 마디에 다시 벌어진다.

1960년대쯤인가?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수많은 사람들이 등본상에서, 그리고 군의 기록에서 일괄 사망 처리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국군 포로도 있었다.


이미 죽어버렸다고 처리된 사람들이 되살아난 것은 1994년이었다.

故 조창호 님께서 강제수용소에서 탈북에 성공한 것이다. 이 일이 크게 이슈화되기 전까지 국군포로의 존재는 망자들처럼 잊혀 있었다.

뒤늦은 복귀 신고, 전역식!

'죽었던 자가 살아난 것'에 대한 카메라 플래시는 한동안 요란했다. 조창호 님은 대한민국이 잊고 있었던 국군포로의 생환과 그들이 겪고 있는 강제노역의 비참한 실상들을 고발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은......

지금 전화를 거신 분의 아버지와 같은 많은 국군포로들은 유해가 되어 한국 땅을 밟고 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아픔은 그들의 자녀들만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북한 땅에서 태어나 탈북한 그들은 국군포로의 자녀라는 자부심으로 목숨 걸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그들이 '유령의 자식' 취급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죽은 것으로 행정적 처리가 끝난 누군가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공허한 메아리들 주인공이 돼버린다. 그래서 오늘도 대통령실 앞에는 '유령의 자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를 대한민국 국가유공자, 국군포로 자녀로 인정하라!'


하지만 국가는 증거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아직도 많은 이들이 부친의 유해를 수습해 중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모셔온다.


실제로 우리 정부에 몇 차례나 북을 통한 공식적 송환을 요청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자력으로 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자녀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부친의 묘를 다시 헤집어야 하는지 그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유해를 위한 전역식도, 예우도 없다.

'국군포로'라는 증명을 위한 비극의 시간만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을 뿐....


아직 묻혀버리면 안 되는 진행 중인 현재가 과거의 것으로 여겨질까 타까워 글을 올려본다.

'생환하지 못한 국군 포로들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로 단순하게 끝나는 역사가 되지 않길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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