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있는 아들이 군 병원에서 무료로 진료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MRI 검사만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군요. 외부 민간병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비용 처리는 어떻게 되나요?"
몇 년 전 어떤 엄마의 질문에, 나는 나 자신만의 상식대로 답변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어머니, 희망하시면 당연히 민간병원 가셔도 됩니다. 하지만 군의관 승인에 따른 위탁진료 외에는 병원 비용은 본인이 부담하셔야 해요. 아드님이 가지고 계신 실손보험으로 처리하시면 되죠."
잠깐의 어색한 침묵 후 더듬거리며 이어지는 그녀의 답변에 나는 얼굴이 벌게질 수밖에 없었다.
"저희는요. 그 실손 보험이라는 거 가입할 돈이 없어요."
그렇다.
이곳 콜센터에서도 사회의 그늘이 드러날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실손보험을 가정 형편으로 갖고 있지 못하는 병사.
아들이 군에 가는 바람에 기초수급권자에서 탈락되었다면서 이제는 어떻게 사냐며 흐느끼는 어머니.
지금 집에서 돈벌이하는 거라고는 아들뿐인데,
군대 가서 큰일 났다는 병든 아버지.
그 그늘들 앞에 나는 벽 같은 규정을 안내하는 내 역할이 슬펐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노력으로 '21년 8월 1일을 기점으로 해서 나는 치료비 환급 안내를 하는 착한 상담원이 될 수 있었다.
병사에 대한 '민간병원 진료비' 지원사업이 시행되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비보험이 있거나 없거나, 모든 병사들이 민간병원을 가게 되면 국가예산으로 본인부담금의 최대 80%까지 지원하게 된 것이다. 과거 한 엄마와의 대화가 오버랩되며 정말 내 일처럼 기뻤다.
그리고 과거와는 달리 전화 오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나의 긍정적인 상담 답변 자체가 참 행복하다.
누군가가 수립한 정책 하나로,
작게는 콜센터 직원의 상담 내용이 변하고
누군가는 삶의 그늘을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 누군가에게 정말 감사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기대한다.
이곳 콜센터에서의 상담 내용이 더 밝고 긍정적이 것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