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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물어내라

콜센터 스토리#4

by 둔꿈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진상 민원인을 만나 욕을 먹거나 비하를 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가장 큰 어려움은 무기력함이다.


이 무기력함 역시 여러 종류의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국가수반이 와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 혹은 타 부처 소관 내용을 내게 소리 지르며 항의하는 것이다.


"내가 군에 갔다 와서 병신이 되었어.

국가가 인정한 병신. 국가유공자라고 들어봤어?"


이렇게 대뜸 반말로 전화를 시작하는 분들의 내면은 대개 '화'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에 반말을 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왜 반말을 하냐고 대거리하기 힘들다. 1분 뒤에 반말에 대한 항의를 하더라도, 전화를 받기 시작한 이 순간은 어쩔 수 없다.

조용히 듣는다.


"국가가 인정한 병신이라고! 국가유공자! 그게 나야! 나 강박증이라고, 아프다고 내보낸 게 너희잖아. 내 인생 어쩔 거야?"

본인 말처럼 강박이 맞는 것 같다. 똑같은 말씀을 대여섯 번 계속, 이상한 웅얼거리는 말까지 섞어가며 반복한다.


조심스럽게 국가유공자들의 예우 문제는 이곳에서 해결이 힘들다고 하자 더 크게 소리 지른다.


"국가유공자! 국가유공자! 내 인생을 다 날려먹고 돈 겨우 몇 푼 쥐어주면 다야!!!"


정말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아픔 흡수기 같은 것을 개발해 몽땅 빨아들이고 싶을 만큼 그의 절규는 처참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끄윽끄윽 울다가 전화를 끊는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기에 그 운명대로 따르다가 변을 당한 많은 분들, 그분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내가 모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전화 몇 통을 통해 처절히 함께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겨우 콜센터 상담원일 뿐, 아직도 그 아픔을 현재에 이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듣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더 있다면, 그저 아픔 있는 많은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고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것뿐이다.


사실은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속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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