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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배경들을 위하여

<배경으로 돌아가기>

by 둔꿈

흔히들 인생의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라고 말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럴까?

내가 현재 참석 중인 연극만 보아도 그렇다. 제목 '돈키호테'에서 드러나듯이 돈키호테가 주인공이다.

그를 중심으로 극 전체의 전개가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간혹 가다가 몇몇 단원끼리는 누구 비중이 적으니 어떻게 역을 조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오늘은 내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갑자기 나를 배려하는 주인공 돈키호테!

"OO님 해설하실 때 그냥 마이크로 목소리만 나오는 것보다 앞에 나와서 관객을 보고 직접 하는 게, 좀 비중도 있고 연기 경험에 더 좋지 않을까요?

나는 손사래 치며 답했다.

"저는 핀 조명도 같이해야 해서, 그냥 목소리만 나와도 괜찮습니다."

아, 다행히 감독님이 내 편을 드신다. 전문가의 의견이 더해지니 운좋게 더 이상 아무 반박도 없었다.

나는 과거에 딱 한 번 무대 앞에서 해설을 해 본 경험으로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관객 앞에 서게 되는 순간 목소리를 넘어선 수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을 말이다. 서있는 자세, 말과 어우러지는 제스처 등 고민할 거리가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피어오르며 마음이 답답해졌다.

내 반응의 수준이라니~ 역시 막내 단원인 것인가? 내 마음 자세가 뭔지 몰라 가만히 들여다본다.

두려움일까? 귀찮음일까?


고민 같지 않은 고민에 잠겨있는데, 둘시네아가 요부답게 몸을 살랑살랑거리며 관객을 향해 무대 밖으로 나온다.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와인 잔을 건넨다. 함께 잔을 부딪치고 마시는 흉내를 내고 다시 무대 안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정말 요염하기 그지없는 둘시네아였다.

그녀는 그 순간 나에게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실제 무대 위 장소와 시간은 온통 돈키호테에게 집중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둘시네아에게 한눈에 반한 돈키호테의 끊임없이 구애의 말만 크게 울려퍼지고 있는 장면이었다.


둘시네아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안 순간 무대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대사를 하고 있는 목소리가 아니라 무대 전체를 조망하니,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조연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사가 거의 없는 죄수들의 건들거리는 행동들, 돈키호테의 미친 행동을 바라보는 배우들의 진심 어린 표정 변화, 심지어 돈키호테가 죽어가는 장면에서는 아무 멘트도 없는데 계속 구석에서 울고 있는 산초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연극 연습을 보면서 인생의 '주인공'이란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어 좋다.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모두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타인의 눈에는 그저 배경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추느냐가 아니라 스스로가 가진 삶의 태도인 것 같다.

나처럼 대충 '해설'에 임하는 순간 정말 조연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동감 있게 연기하는 자세,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모습은 눈을 사로잡는다.

조연이 주연이 돼버리는 마법이 펼쳐지는 것이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괘념치 않고 자신의 영역 안에서는 무조건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생동감 있는 살아있는 배경이 된다.

그리고 그 배경은 누군가에게는 멋진 주인공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앞에 있는 잔을 들어 건배하고 싶다.

"멋진 배경들을 위하여!"

<배경으로 돌아가기>


뒷면이 싫다며 울다 지친 어느 날

네게 마음 조각들을 훔쳐내

배경을 벗어났다.


무대의 중앙에 서서

발밑에 깔린 것들을 헤아린다.

파편들 사이로 고고히 흐르는 너


너를 따라 뒤돌아보니 배경이 웃고 있다.

슬며시 마음조각 돌려주고 나도 웃는다.

다시 뒷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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