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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 가게에서 연극을 한다.

<무대가 어디든>

by 둔꿈

어느 마을, 다리 건너 한 닭갈비 가게에서 단원들의 여러 가지 대화가 오고 가고 있다.

"우리 연극 포스터가 나왔어요."

"우와!"

"그런데 이거 우리 극단 회장님 아들이 만들었어요. 저작권 때문에 아무 이미지나 가져다 쓸 수는 없어서 아드님이 직접 만들었다지 뭐예요?"

쑥스럽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회장님 앞에는 닭갈비 불판이 놓여있지만 닭갈비는 없다.

대신 옆에는 노트북과 작은 스피커가 놓여있다.

그 스피커의 음악이 울리기 시작하면 모두들 앞으로 나와 다른 이들로 변신한다.

머리를 긁적이던 회장님은 꿈을 좇아 창을 높이 드는 돈키호테로, 조금 전까지 붕어빵을 뜯어먹던 조신한 50대 여성은 산초가 되어 옆에서 촐랑거린다.

이번달 25일 연극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서자, 감독님이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휴일인 오늘도 자발적으로 이 닭갈비 가게로 모인 것이다.

왜 하필 닭갈비 가게냐고?

회원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며 한 달에 겨우 만원 걷는 극단이다. 당연히 지자체 강당 대관료도 아껴야 한다고 고민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극단원 중의 한 분이신 닭갈비 가게 사장님께서 장사 시작 전까지 비어있는 공간을 할애해 주셨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평일 저녁 7시에 지자체 강당에서 모여서 공연할 때보다 지금이 더 따듯하다.

낮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분명 여기 모인 사람들 때문이다.

아무 가 없이 포스터를 그려낸 어떤 청년.

닭갈비 가게 공간을 내어주신 사장님.

그리고 휴일 오후 시간까지 바치는 단원들.

내 인생에서 어떤 이해타산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좋아서 이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언제 봤었을까?

두 타임으로 나눠 딱 한 시간만 하는 공연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연습하는 모습도 너무나 열정적이고 보기가 좋다.

사실 상대방을 위해 어떤 조언을 한다 해도 서로가 그것을 비난으로 받아들이거나 오해하기가 십상인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연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뭘 실수했는지 잘 몰라. 앞에서 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대로 다 얘기해줘야 해. 칭찬도 힘껏! 비평도 잔뜩!"

처음에는 뭔가 피드백을 한다는 것이 너무 어색했는데, 지금은 편하다.

배우들의 눈빛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말 전문 배우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잘 해내겠다는 열정이 피부에 와닿는 것만 같다.

그래서 오늘도 마음껏 보고, 듣고, 이야기하고 왔다.

"오늘 알돈자 언니, 감정 너무 잘 살아있어요. 와... 울 뻔했다니까요. 너무 좋았어요."

<무대가 어디든>


목소리 높여

나는 내가 된다.


손을 들어

너는 네가 된다.


나와 너는 극이 된다.


무대가 어디든

삶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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