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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핀조명을 맡았다고!

<하이라이트>

by 둔꿈

우리 극단의 연극 개막이 한 달 뒤로 성큼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대본을 연기하는 것 말고도 뭔가가 부산스럽다.

연극 복장, 배경 음악, 소품, 조명 등 온갖 이야기가 오고 간다. 직장인 중심의 연극 동아리라 연출 전문가가 없다 보니, 모두가 배우인 동시에 작은 연출가인 셈이었다.

나 역시 '해설'을 맡았지만 다른 배우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틈 날 때마다 집에서 아이의 장난감 칼과 안 쓰는 핼러윈 복장들을 뒤적거리며 찾고 있다.


"여기 라이트 바텐을 켜세요."

우리 다재다능하신 감독님의 한마디에 어수선함에서 '조명'이라는 또 다른 나의 역할로 다시 집중했다.

"자, 빨강, 파랑, 흰색, 녹색으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 변합니다. 거기 이 레버를 움직이면 깜빡깜빡 점멸하는 효과도 나오고요."

옆에 음향을 맡으신 분의 대본은 까만 필기 낙서로 가득했는데, 몇 번 조명을 만지작 거리다 보니 이해가 갔다.

'여자 주인공의 비극적 장면에서는 붉은 조명, 극적인 장면에서는 점멸 효과를 넣을까?'라고 속으로 웅얼거리며 나 역시 대본과 연필을 찾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이 연출 욕심은 곧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극이 진행되자 남자배우 한 분이 조명을 하러 들어가셨다.

'어? 이상하다. 내가 안 해도 되나?'

하지만 깜깜한 곳에서 대본을 째려보며 '해설'을 해보는 것도 처음이라 계속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중간에 누군가 나에게 '핀 조명이잖아요'라고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리고 머지않아 감독님이 주인공에게 밝은 빛 조명을 쏘아주는 것이 보였다. 돈키호테의 독백 장면이 더 멋져 보였다.

'아! 저게 핀 조명이구나!'

속으로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다행이다 싶었다.

지금 조명 맡은 분이 연출했던 그런 빛깔을 내는 것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주인공에게 하이라이트를 비추는 핀 조명을 맡았다고! 멋지게 해내야지!

<하이라이트>


네게 하이라이트 주고 싶어

나는 어두운 곳에 몸을 숨겼다.


긴 시간 암전에도

너를 기다린다.


무대로 올라선 네게

빛을 쏟으리라.

마음도 함께 하얗게 보내리라.


세월이란 극 따라

너와 함께 봄, 여름, 가을, 겨울.


무대에서 내려선 네게

빛을 끄리라.

마음도 같이 까맣게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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