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좀 이른 혼자만의 연극 모임을 얼떨결에 가졌다. 회사가 끝나자마자 열심히 달려왔더니 저녁 6시 30분에도착한 것이다.
막내답게 먼저 모두가 앉을 수 있도록 책상 배치를 끝냈다. 무대 한 중앙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무도 없는 그 가운데로 나아갔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연극 '돈키호테'의 엔딩씬 "이룰 수 없는 꿈'을 따라 혼자 불러보았다. 열심히 연습해서 그런가 이제 제법 음이 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역시나 한 곡 부르니 또 목이 훅 가버렸다.
그렇게 잠깐 앉았다가 이번에는 내가 맡은 배역 '해설'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해설도 배역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돈키호테' 뮤지컬의 주요한 장면만 모아서 써머리해 올리는 극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등장한 배역 아닌 배역 '해설자' 역할.
나는 지난주 몇 번이고 다시 고쳐 쓴 스스로의 해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노려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감독님은 적당히 깝죽대는 나의 글쓰기를 묵인하고 계신 듯했다.
'좀 오버 아닌가? 너무 튀면 극과 극을 연결하는 흐름이 이상해지는데......'
지난주에 썼을 때는 윤활유처럼 멋지게 바꿨다고 득의양양했었는데, 지금은 그저 마음이 답답했다.
'써놓은 글을 묵혔다 다시 본다.'라는 친구의 말이 뼈저리게 와닿는 순간이다.
나의 고민과는 관계없이 멤버들이 하나 둘 모이고, 그들의 열정적인 연습 공연이 또 한차례 시작되었다. 그들의 열연이 끝날 때마다 나는 중간중간 '해설'을 연기했다.
내 딴에는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해설'을 관객의 시선으로 만들어 봤다. 이 연극을 수도 없이 봤던 관객 하나가 나와서 오늘 새로 온 관객들에게 '스포'하듯이 앞에 부분만 살짝 말하는 스타일의 해설을 쓴 것이다. 나는 그렇게 연극의 메인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을 계속 심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생각과 달랐다.
돈키호테 역할을 맡은 분께서 조언한 대로 '해설이 너무 건들대는 느낌?'
조연은 조연답게, 해설은 해설다워야 한다.
내가 최초에 가졌던 의구심이 맞았다.
'돈키호테'라는 극이 워낙 진중한 극이다 보니 가벼운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갑자기 배우 김혜자 님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 그 잔잔한 호수 같은 목소리!나도 흉내 내보고 싶어졌다.
노력하면 작은 습지 정도는 탄생할지 혹시 아는가? 다음 주는 조명실 구석에 숨어 목소리만 연기해 봐야겠다. 조곤조곤 속삭이는 스타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