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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극단의 막내 단원이 되었다.
11화
연극이 끝난 후
<마지막 >
by
둔꿈
Nov 27. 2023
뒤풀이, 노래방 반주 소리에 맞추어 여배우였던 이가 오랜만에 뮤지컬 노래가 아닌
가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몇 시간 전에 공연을 끝냈을 때는 정신없이 강당에서 세트와 장비를 철수시키느라 몰랐었는데, 지금에서야 갑자기 눈가로 뜨거운 뭔가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여배우였다가 이제 평범한 50대 직장인이자 주부로 돌아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녀 자체가 내게는 마치 조명이 꺼진 무대처럼 느껴졌다.
무대에서 매주 만나던 그 열정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던 돈키호테의 파트너, 둘시네아의 노래를 이제 다시 들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니 뭐가 이렇게 슬픈지 참 이상했다.
그리고 곧 깨닫게 되었다.
나
역시 여기 모인 단원들을 넘어서서,
극에 나오는
등장인물들까지 사랑했었음을......
감독님은 최종 리허설 때까지도 끊임없이 단원들에게 "여러분이 극 배역의 그 사람 자체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었다. 그 말이 해설을 맡은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해설 역시 하나의 배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모르게 이미 그 안에 녹아들어 가 있었다.
꿈을 좇는 돈키호테의 모험과 여주인공의 시련 속에 나 역시도 마음을 다
바쳤었나 보다.
애정을 갖고 해설했던 그들이 사라지고,
내가 핀 조명으로 비춰야 할 주인공들은
이제 글자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들이 돼버렸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돈키호테, 둘시네아, 산초, 도지사, 간수
, 조카 등과의 이런 눈물 어린 헤어짐 뒤로 다른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심장 뒤편 어딘가로 다른 뜨거운 것이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희곡의 등장인물들에게
돈키호테 배역들이 나타나
그들이 뭔가 수혈을 해주고 간 느낌? 뭔가
평면적이던
캐릭터들의 성격이 더 입체적으로 내 머릿속과 마음으로
뚜렷이 살아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내
머릿속의
그
캐릭터들이 눈앞에 있는 단원들 위로 덧씌워진다는 것이었다.
단원들이 내 앞에서 돈키호테에서 역할 A, 또 산초에서 역할 B로 변신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극의 엔딩이 가져다주는 슬픔을 살짝이나마 덮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였을 거다. 감독님 앞에서 술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다음 연극은 꼭 제 희곡으로 해달라고 주정을 부린 게..... 부디 귀여운 주정으로 넘겨주셨길 바랄 뿐이다.
이렇게 나의 첫 연극과
열정으로 가득한 배역들과의 만남은 끝났다. 그리고 두 번째를 뜨겁게 기다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 극단 이름이 '불나방'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에 혼자 키득키득 웃어본다.
이제 이 연극 밖 세상으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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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배경들을 위하여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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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클라이맥스의 표정
11
연극이 끝난 후
나는 극단의 막내 단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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