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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Feb 29. 2024

엄마

암투병


2020년 4월의 어느 날, 땅에는 푸른 새싹들이 봄내음을 풍기면서 세상으로 나오고 있고 나무에서는 겨울 내내 숨겨왔던 하얀 꽃송이의 벚꽃이 피어나고 있던 쌀쌀하지만 따뜻하던 어느 봄날이었다. 봄처럼 따뜻해져 가던 마음이 눈물로 젖어왔던 날,


‘조직검사를 해봐야 정확하지만 저의 경험과 소견으로는 암인 것 같습니다. 사이즈가 너무 크니깐 일단 결과 나올 때까지 제일 먼저 대학병원을 빠르게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동네 내과 원장님의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믿기지 않아 재차 확인했지만 그저 걱정 말라는 말과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엄마는 일 년 동안 이어져오던 변비증상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셨지만 우리는 건강검진 겸 내시경을 권유했고 별생각 없이 받았던 내시경에서 그렇게 대장암을 진단받으셨다.



아직 마취에서 깨지 않은 엄마를 확인하고 병원 밖으로 나온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온몸 가득 차오른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코끝을 스쳐가는 봄바람은 시리도록 차가웠고 내 슬픔을 한껏 더 흔들었다. 


마음을 달래고 마취에서 깬 엄마를 마주했지만 다시금 세차게 일렁이는 감정에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 아무 말도 뱉어낼 수 없었고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무언가를 예감하신 듯 말없이 웃어주셨다.


괜찮다, 별거 아니다, 의술이 많이 발전했으니 괜찮을 거다, 되려 나는 위로하는 엄마였지만 실은 본인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는 자식 앞에서 강해야 했기에, 슬프고 겁나도 두렵고 불안해도 웃어 보여야 했을 거다. 그게 우리나라의 대물림처럼 내려오는 엄마들의 모습이니까..

그런 엄마를 보면서 꼭 붙들고 있던 마음이 터져버린 채 한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언제 잡아봤는지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병원을 나서고 집으로 가던 그 길에서 스쳐가는 봄바람이 자꾸만 나의 눈에서 꽃을 터트리던 그런 4월이었다.


그 후로 병원과 교수님을 찾아보고 예약하기까지 모든 과정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정말 운 좋게도 모든 건 빠르게 진행되었고 최종적으로 대학교수님을 통해 암이 확실시되었고 수술 일정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수술 당일, 2시간 넘게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에 시간은 정지 돼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인간은 생과 사를 주관할 수 없기에 이 모든 것이 신의 영역인 것 같아서 두 손을 꼭 쥐고 세상의 모든 신에게 간절하게 고했다. 살려달라고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일분일초를 간절히 기도하던 시간을 지나 드디어 수술은 종료되었고 담당주치의의 수술 잘되었다는 말과 함께 처음으로 긴 숨을 뱉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병실로 돌아온 엄마의 얼굴에서는 수술의 고통과 힘듦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온갖 줄들이 몸 이곳저곳에 꽂혀 있었고 계속해서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서 가슴이 미어지고 죄송스러웠다.


가만히 잡고 있던 엄마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미간이 좁아지면서 아주 작은 신음소리가 묻어 나올 때면 아픈 티조차 맘껏 내지 않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는 어디까지 강한 걸까, 엄마라는 건 대체 뭘까, 내가 과연 엄마 마음의 반의 반이라도 알 수 있는 걸까, 나는 엄마에게 좋은 딸인가, 나는 잘해왔던 걸까 하는 온갖 질문과 후회만이 아른거렸고 엄마와 딸로서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그저 내가 뱉을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 그 말뿐이었다.


엄마의 소중함을 간과하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아프시고 나서야, 엄마의 아픈 모습을 보고 이제야 깨닫고 마는 나는 참 못난 자식이었다. 더 따뜻하지 못하고, 더 다정하지 못하고, 엄마가 주신 사랑의 반의 반도 드리지 못한 철없고 부족한 못난 딸이었다. 못나고 부족한 자식이기에 이제라도 따스한 마음 전하고자 아파하는 엄마의 손을 두 손으로 따뜻하게 꼭 잡아드렸다.


엄마는 차츰 회복을 하며 기력을 되찾아가셨고 대장암의 최종 병기는 2기로 확정되었다. 혹시 모를 전이가능성으로 수술 후 6개월에 걸쳐 힘든 항암을 진행하셨고 감사하게도 큰 이변 없이 모든 치료가 잘 마무리되었다. 엄마는 묵묵하게 긴 시간 주어지는 고통들을 인내하셨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 대장암 수술부터 항암까지 그 긴 시간들 동안 힘드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항암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힘든 시기마다 불평하기보단 그 또한 웃으면서 받아들이셨고 그 모든 과정들을 삶의 일부로서 즐기시면서 묵묵하게 이겨내 오셨다. 이처럼 우리 엄마는 그 누구보다 여리면서 강한 분이셨고 삶을 즐길 줄 아시는 당당하고 멋진 분이시다. 나는 항상 그런 엄마의 모습을 닮고 싶었고 생을 대하는 엄마의 깊이를 하나씩 배우면서 인생을 알아갔다.



나와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영원히 함께할 것처럼 삶은 흘러가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늘 되새기며 살아야 한다.


삶과 생명은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다는 사실. 그리고 내 곁에 , 당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은 갑작스레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지난 시간을 돌이 켜봤을 때 후회가 남지 않는 관계는 없겠지만,

적어도 큰 후회로 남기지 않기 위해  함께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안부를 자주 묻고 사랑하며 마음과 행복을 나누어야 한다.


오늘도 내 곁에 있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한 번 더 따뜻한 말로 안부를 묻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또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늘 감사할 것이다.


매년 봄이면 어디선가 익숙한 그 봄내음이 코끝을 건드리며 귓속말을 전할 때면

지금 내 곁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두 손 모아 감사함을 전한다.


그림.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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