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영(감독), (2022), 「다섯 번째 방」(영화), 탄탄필름-
2024년 6월 21일(금) 저녁 7시 전찬영 감독의 「다섯 번째 방」을 보기 위해 수원미디어센터 상영관을 찾았다. 「다섯 번째 방」은 엄마가 자신의 독립된 공간인 ‘방’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방’이 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내가 머물렀던 공간과 지금 머무르고 있는 공간을 되짚어 보게 한다. 내가 머무르는 나의 방과 내 안에 있는 나의 방이 얼마나 교감하는지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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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김효정)
엄마는 2녀 1남을 키우면서 30년 시집살이를 했다. 상담사 공부를 하면서 경제력을 지니기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되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의 제일 어른이 된 시어머니는 경제력을 가진 며느리에게 큰 방을 내어주고 2층으로 올라간다. 엄마는 시댁에서 가장 작은 방에서 가장 큰 방으로 옮겨간다. 엄마의 세 번째 방이다. 엄마는 거기서 한 번 더 방을 옮긴다. 상담이 가능한 공간을 꾸미기 위해 2층으로 이사한다. 엄마의 네 번째 방이다.
일을 하고 와서 부엌에 들어서면 설거지해야 하는 그릇들이 보인다. 구부리고 앉아 냉장고도 닦고, 싱크대도 닦는다. 누가 나를 좀 보살펴 달라고 온몸으로 말한다. “왜 내가 밥 먹었는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설거지 안 한 것에만 신경을 쓰는지 이해가 안 됐거든”하고 목소리를 낸다. 남편의 폭력적인 행동에서 아이들과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지 못했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가정폭력 예방 강사’, ‘심리상담사’로 활동한다. 공부하고, 상담하면서 자신을 더 들여다보고 치유해 간다.
자꾸 엄마의 방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아빠. 그는 외로운가보다. 술에 취해 자꾸 2층 엄마의 영역인 네 번째 방을 찾는 아빠로 인해 엄마는 방문에 잠금장치를 단다. 그녀는 자신이 머무를 수 있는 안정된 공간인 ‘방’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한다. 다큐멘터리에 다 담을 수는 없는 여러 일을 겪으면서 엄마는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을 찾아 집을 나온다.
아빠(전성)
30년 동안 온 마이 웨이, 자기 방식대로 살아온 아빠는 투덜거림과 철없음이란 갑옷을 입고 온 가족을 무장해제 시킨다. 첫 등장부터 충격이다. 아무리 여름이고 집 안이라지만 팬티만 입고 있다니. 그 차림으로 아내가 출근하는 차의 시동을 켜고, 창문을 내려놓으려 대문 밖으로 나간다.
감독(딸)이 찍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나만 악당으로 나온다”고 말한다. 해맑게 웃는다. 한때 잘 나가던 ‘소파 공장 사장’이었던 아빠는 가끔 담뱃값이 필요하면 아내의 차를 닦는다. 아내가 눈치를 채고 만 원을 준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웃는다. 오픈카(트럭 뒷자리)에 타고 가면서 딸에게 묻고 답한다. “찬영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난 찬영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어릴 적부터 살아온 그 집에 그는 과연 자신의 방을 가졌을까? 방이라고 이름 지어지는 공간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 아빠는 자신의 방에서는 잠만 자고 자꾸 엄마의 방으로 들어오려고 할까? 아빠에게 ‘평생교육’을 추천하고 싶다. 5년 후, 10년 후 무엇인가 나의 시간을 채우기 위한 것을 배우고, 누군가와 만나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나를 발전시키는 것을 권한다. 아내를 좋아하고 아내 없이는 힘든 시간은 이해하지만, 같은 공간에서도 잠시 떨어져 다른 시간과 생각으로 자신을 채우고 또 버리는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꼭 필요하다. 상담을 권해야 하나? 아내가 상담사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큰딸(전찬영)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를 프레임 안에 담고 있는 그녀는 큰딸이고 감독이다. 얼마나 많은 설득과 격려와 묵묵함 위에 이 한편이 나왔을까? 짐작하기도 어렵다. 2018년부터 5년 동안 찍었다고 한다. 엄마와 아빠의 일상에서 엄마의 서사를 담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는 많이 덜어냈다고 했다. (「다섯 번째 방」 언론시사회에서) 그래서 다큐는 엄마 효정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그녀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딸이 있다.
시어머니
아들이 독립을 안(못) 하고 부모와 사는 것이 좋았을까? 아들이 장가를 가고,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이루며 사는 동안 이것저것 많은 도움을 주었을 텐데, 그 아들이 대견했을까? 늘 걱정했을까? 그 옆에서 고생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웠을까? 그녀의 눈에 며느리가 세 번째 방에 자신의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하다. 사회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니 역할도 목소리도 달라지는 것에 순응하셨을까? 아니면 기가 막히셨을까?
“아이고, 말세다. 세상이 우째될라꼬 이라노” vs “내는 그리 못 살아 봤는데 니는 조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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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家父長)이 가족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가족 형태를 가부장제라고 한다. 가부장제는 동양에만,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절대적인 가부장제는 로마 시대에 완성되었다. 우리의 생활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가부장제가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물론, 그 변화의 속도가 아주 느리거나 영향을 전혀 받지 못한 가정도 많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이 가부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섯 번째 방」에서도 엄마가 경제력을 가지게 되면서 작은 방에서 큰 방을 차지하게 된다. 엄마는 일을 준비하기 위해, 집에서 하는 상담을 위해 집에서 그녀만의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다.
집에서 자신의 ‘방’을 찾던 엄마는 집 밖으로 나와 자신의 ‘다섯 번째 방’을 구하는 것으로 다큐멘터리는 끝난다. 그녀를 도와주는 딸과 함께 ‘다섯 번째 방’을 꾸미고 정리한다. 집에서 출퇴근하는 장소인지 완전한 독립인지 모호하다. (나만 이해를 못 했을 수도 있다) 나는 강하게 홀로서기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조금 헛헛해 보였다. 절대 변하지 않을 남편에게서 이해받지 못하는 그녀의 독립과 행복, 자존감에 동시대를 사는 나와 같은 50대 프리랜서 강사 친구들의 응원을 모아서 보낸다.
<다섯 번째 방> 언론시사회에서 김효정 님은 “가족의 형태가 달라진 것 같다. (…) 각자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선을 잘 지키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늦었지만 늦어서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전찬영 감독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할 곳이 없는 분들이 보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가족 구성원들이 다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함께 보고 감정이 격해져서 다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고통 없이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안다.
둘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데 공간은 큰 의미를 지닌다. 나는 나의 ‘방’을 둘러보고, 90년대 생인 우리 아이들이 이룰 가정과 그들이 만들 ‘방’을 생각해 보았다. 90년생들이 만드는 가정은 60년생들이 만든 가정과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바라본 부모와 조부모가 이룬 가정을 더 이상 답습하지 않는다. 이제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 위에 가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족이라고 해서 너무 밀착되어도 그렇다고 멀찍이 떨어져서도 안 된다. 적정한 거리와 소통과 이해가 필요하다. 도움을 요청하면 그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 상대의 표정 변화가 느껴지는 거리에서 서로 교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섯 번째 방」은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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