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린 시 한 구절
이어령의 시 <정말 그럴 때가〉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를 가나 벽이 있고, 아무리 사람들 속에 있어도
마치 무인도에 홀로 있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내 신발 옆에 벗어놓았던 작은 신발들,
내 편지봉투에 적은 수신인들의 이름들,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던 말소리들…
지금 모두 다 어디에 있는가.
아니, 정말 그런 것들이 있기라도 했었는가.
그럴 때에는 연필 한 자루 잘 깎아 글을 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손톱, 묵은 흉터, 떨어진 단추,
한 방울 빗방울에 대하여.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습니다.
주변은 분주히 돌아가는데, 내 마음만 멈춘 듯 고요한 날.
웃음소리 속에서도 문득 외로움이 스며드는 순간이 있죠.
저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며 활기찬 하루를 보내다가도
하루의 끝, 텅 빈 교실 불을 끄고 나오는 길에
쓸쓸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이어령 선생의 시 한 구절,
“정말 그럴 때가 있지.”
그 한 문장이 나의 허전한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그럴 때 연필 한 자루를 잘 깎아 글을 쓴다고요.
저도 그 방법을 종종 씁니다.
오늘 아이와 나눈 대화, 수업 중 웃었던 장면,
혹은 부모님께 전화 드리며 느낀 따뜻함을
짧게라도 메모장에 적어둡니다.
글을 쓰면 마음이 정리되고,
어두운 구석에 빛이 스며듭니다.
글쓰기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마음을 치유하고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다리입니다.
때로는 문장을 통해 울고,
또 어떤 날은 한 줄의 글 덕분에 웃습니다.
그것이 바로 글의 힘, 그리고 인간의 회복력 아닐까요.
시 속 ‘자란 손톱, 묵은 흉터, 떨어진 단추’는
결국 우리 일상의 사소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 사소함 속에 삶의 온기가 숨어 있습니다.
학생이 남긴 작은 메모,
창문에 맺힌 빗방울,
퇴근길의 붉은 노을빛 같은 것들.
그 모든 게 하루의 피로를 녹이고
다시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삶은 거창한 목표보다
이런 작고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이어령의 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외로움을 바라보는 태도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정말 그럴 때가 왔을 때,
당신도 한 자루 연필을 들어보세요.
조용히 글을 쓰는 그 순간,
당신의 마음은 이미 치유의 길 위에 서 있을 겁니다.
외로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길러내는 감정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결국 자신만의 빛을 찾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