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에 출국한 일을 글로 쓴 것입니다)
올 것 같지 않던 출국 날
수하물 때문에 마일리지를 영끌해서 프레스티지석을 구매했다.
코시국이라 마일리지를 쓸 수 있었지만,
코시국이라 공항 라운지엔 뭐가 없었다.
비행기에서 보이는 한라산제주도를 지나 망망대해가 나오니 비행기 안 조명이 꺼졌다. 어두운 비행기에 혼자 누워있으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이 나이 먹고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해서 어학연수나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슬퍼졌다.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직장을 잡고 삶이 안정되어 가는데 나는 아직 백수고 삶에 정착하지 못했고, 이런 상황에서 대만으로 떠나는 내 모습은 마치 한국에서 살 자격이 안돼서 쫓겨나는 사람 같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우울해하기엔 대만은 너무 가까웠고 상념에 빠질 시간조차 없이 얼른 눈물을 닦고 코로나 시국 입국심사를 준비해야 했다.
이런 시국에 해외 입국은 처음이라 잔뜩 긴장했는데 공항에서 별 일 없이 무탈하게 빠져나왔다. pcr 확인서 음성 확인하고, 격리 호텔 예약서 확인하고, 격리서 작성하고, 유심칩 사고, 방역 택시 타고 방역 호텔로 가면 끝! 복잡해 보이지만 공항 직원분이 붙어서 하나하나 도와주셨기 때문에 금방 끝났다. 공항에서 방역 호텔까지는 방역 택시를 이용했는데, 다행히 정부에서 방역 택시비 지원금이 나와서 1000위안(한화 약 4만 원)으로 갈 수 있었다.
도착 다음 날부터 격리 1일로 치기 때문에 총 15일을 격리했다. 오전 도착 비행기여서 너무 억울했다. 격리 15박 16일 총 39000위안, 피 같은 160만 원이 보름 만에 사라졌다.
160만 원이나 썼는데 방역 호텔은 청결하지 못했고(곳곳에 먼지가 가득했고 바닥엔 전에 쓰던 사람의 잘린 손톱도 있었다) 수건도 물도 부족했다.
해외에서 온 사람을 바이러스 취급하며 소독제로 샤워를 시키더니 정작 방역 호텔은 더러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나중에 방역의 구멍이 되어 대만에 코로나를 유입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풍족한 조식. 저 땐 저 딴빙蛋餅(전병)과 뤄보까오蘿蔔糕(무떡)가 맛있는 줄 알았는데... 질려버린
파이구(돼지갈비), 질려버린 팔방만두 하루 건너 하루 나오던 훠궈와 매일 반복되는 음식에 지쳐 10일
차에 배달 시킨 초밥과 컵라면 막바지에 조금 질리긴 했어도 아무거나 잘 먹는 스타일이라 밥은 입맛에 잘 맞았다. 1월에도 타이베이의 낮 기온은 20도가 넘어갔고, 태양이 무척이나 뜨거워 날이 좋은 날엔 한국의 여름만큼 더웠다. 이틀에 한 번꼴로 점심에 훠궈가 나왔는데 나중엔 너무 질려서 격리 끝나고도 훠궈는 먹어도 저 탕은 다시는 시키지 않았다.
네이버 카페 포모사를 통해 건너 건너 방역 호텔을 예약했다. 그때 내 예약을 받아주신 직원분이 가끔 차와 과자, 과일을 주셨다. 수건과 물이 부족하다고 연락하면 수건을 바꿔주시고 물도 가져다주시고 살뜰히 챙겨주셨다(나중에 물은 더 달라기 미안해서 우버 이츠로 시켜 먹었다. 근데 15일 동안 500ml 20통은 너무 적은 거 아닌가 그것도 더운 나라에서). 이역만리 타지에서 격리하는데 나를 신경 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지에서 혼자 격리한다고 시간 쪼개서 줌, 영상통화해 준 친구들, 가족들 너무너무 사랑하고 감사하다. 덕분에 위기의 순간이 왔지만 잘 버텨낼 수 있었다.
격리 끝,
행복도 잠시
방 구하기라는 큰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Prologue. 나는 어쩌다 대만에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