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걱정과 안도사이

삶을 연구합니다.

by 로이홀릭

유방외과를 찾아간 건 오랫동안 해보지 않았던 초음파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니, 사실은 엄마의 유방암 진단 이후 마음이 불안해서였다.

초음파실에 내려앉은 침묵은 긴장감을 돌게 만든다. 이따금씩 들리는 의사 선생님의 갑자기 시작된 마우스 딸깍 소리는 마치 무언의 메시지처럼 불안하게 만든다. 이윽고 사이즈를 재는 듯한 모습이 보였고, 혈류량이 얼마나 되는지도 체크하는 것 같았다. 불안했지만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오른쪽 왼쪽 유방에 무언가를 체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시더니 짧게


"아무래도 조직 검사를 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


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나의 심장이 쉴 새 없이 두근거리며 온갖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 검사 예약이 다 차 있어서 다른 날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부분마취 주사를 맞으면 총 모양의 검사 도구가 조직을 떼어낸다고 한다. 아프다는 사람도 있고, 참을만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아픔보다는 검사 결과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끝도 없었다.


다시 찾은 병원. 떨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검사복으로 갈아입고 검사실에 누웠다. 의사 선생님은 마취를 하며 차분하고 다소 따뜻하게 검사를 진행해 주셨다.


"환자분, 여기 보이시죠? 여기가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인 모양과는 달라서요. 마취가 들어갈 때 약간 뻐근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총소리가 날 거예요. 하지만 소리만 크고 아픔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미리 총소리를 들려드릴게요. 놀랄 수 있으나 소리만 큰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


생각보다 마취는 견딜만했고, 총소리가 예행연습을 했지만 깜짝 놀랐다. 한 번이 아닌 세 번 정도 소리가 났다.


"조직은 잘 체취 되었습니다. 일주일 뒤에 병원에 내원하시면 결과 알려드릴게요. "


간호사 선생님은 지혈을 위해 30분 동안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했다. 진료실 앞에서 30분 동안 지혈을 하며 앉아있었다. 내 주변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는 증상이 괜찮은지 초음파만 하고 돌아가는 듯했다. 내 마음은 끝도 없이 많은 생각들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억울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엄마의 암 수술과 나머지 과정들이 남아 있는데, 내가 혹여라도 암에 걸린다면 부모님이 더 크게 충격받으실 것 같아서 언제까지 숨겨야 할지 그런 생각들이 몰려왔다.


차가운 겨울이었다. 병원을 나서니 영하의 날씨가 펼쳐졌지만 내 손은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를 검색해 보고 있었다.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 20분 정도는 영하 10도의 추위를 잊어버리고 나의 증상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초음파에 봤던 모양이 잊히지 않았다. 종양은 수직으로 자라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나의 초음파 모양은 수직의 양상을 띠는 모양이었고, 인터넷 검색에서는 나의 모양은 종종 악성종양으로 판정된다는 글도 보였다. 탄성초음파를 통해서 혈류량을 잴 때 많은 혈류량이 지나가는 자리는 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아무래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해두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남편과 아이는 종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이를 보는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해맑은 아이는 엄마가 왜 이렇게 슬픈 표정을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요즘 유행하는 소다팝 노래를 부르며 온갖 재롱을 부렸다. '나는 아직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아프면 안 되는데...' 계속 되뇌게 되었다.


며칠 뒤 엄마와 같이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약간은 수척해진 엄마의 얼굴을 보는데,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숨기기로 했다. 그리고 애써 밝은 척 그 시간을 그냥 때웠다. 엄마랑 평소에 가고 싶었던 북한산 언저리에 있는 카페에 가서 진한 대추차를 마시며 일상을 보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 영원 같은 시간이었다. 엄마의 유방암으로 인해 카페를 가입했었는데, 그때 공부했던 많은 것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 나에게 펼쳐질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었다.


'0기 혹은 1기이면 재빨리 수술을 받고 회복할 수 있을 거야, 2기 3기라도 생존율이 높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고, 4기더라도 요즘은 약이 많이 발전해서 치료를 잘 받으면 되니까 걱정은 조금 줄여보자'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최근에 회사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회사 때문에 이 병이 찾아온 거라면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과 앞으로 뭘 먹고 살아가지라는 막막한 부담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남편에게 계속 짜증을 내게 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시 짜증 내 고의 무한 반복이었다.


나는 내가 시나리오 작가를 해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도 완벽한 작품을 써 내려가고 그에 맞는 스토리 구상이 끝이 났다.

특히 요즘 내 몸에 찾아온 여러 가지 통증은 결국 나를 말기암 환자로까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는데, 조직검사 결과 듣기 전날에는 남편에게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연한, 마음에 없는 말도 아무렇게나 뱉어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조직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전날, 시댁에서 아버님 생일잔치를 그날 하면 어떻겠냐는 연락이 왔다. 참 눈치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담담하게 가겠다고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요동치는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었다. 검사 결과를 다 같이 들으러 가겠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열 번 정도는 번복을 했다가 결국에는 가족 다 같이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병원을 향했다. 철부지 같은 아이는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어디 가는 건지 왜 가는 건지 궁금해했다. 병원에 가는 거라고 알려주고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이따금씩 그리고 자주 일어난다고 알려주었다.


그날따라가는 길이 막힘없이 술술 열리는 것 같아 오히려 불안했다.

병원에 다다랐고, 진료를 기다리는데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만이 나왔다. 평소에 외워둔 말씀을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 문을 열고 잔뜩 긴장된 모습으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남편과 들어갔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던지 의사 선생님은


"다행입니다. 결과는 괜찮게 나왔으니 걱정 말고 이리 오세요. 이 모양을 보시면 의심은 되었지만 그냥 혹으로 보입니다. 대신 6개월 뒤에 와서 어떤지 한 번 체크해 보면 좋겠네요. 다행입니다. "


의사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가 너무 따뜻하고 고마웠다. 여태까지 만났던 진료실에서의 어두운 톤에서 벗어난 처음으로 듣는 밝은 목소리였다. 어쩌면 환자에게 전해야 할 진솔한 소식이 혹여라도 표정에서 미리 내비치지 않기 위해 평점심을 유지하는 선생님의 자세였다는 안도감이 몰려오는 순간이었다.


지난 1주일 동안 나에게 찾아온 삼만 번의 한숨은 오늘 안도의 한숨으로 마무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오늘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남길 시간을 간절하게 바라왔다. 물론 환자의 에세이도 이미 작품 중에 하나로 계획은 해두긴 했지만, 이렇게 짧은 나지막한 안도의 한숨으로 끝나게 되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 시간에도 많은 환자가 생겨나기도 하고 아직은 건강하다는 결과를 듣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시간을 통해 건강의 소중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아픈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전환의 사건이기도 했다.


병오년, 새해 모두 건강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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