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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으로 Apr 07. 2022

4월 7일의 꽃, 공작고사리

'신명'이라는 꽃말

 오늘의 꽃은 '공작고사리'입니다. 어떤 고사리인지 아무튼 살랑살랑 바람 좋아하는 고사리가 저희 집에도 반려 식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 이름은 '고소영'입니다. 소영이는 물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척척하게 스프레이 해 주면 신나 하며 물기를 가득 머금고 바깥바람을 맞는 것을 좋아합니다. 꿀꺽꿀꺽 물 마시고 촤르르 샤워하고 나면 정말로 신명이 나 보이는데 물 좋아하는 고사리들이 그렇듯 오늘의 꽃 공작고사리도 아마 비슷하겠지요. 비가 오는 날이면 환호성을 지르고 싶어 할 것 같습니다. 아마 그런 느낌 아닐까요. 진짜 목마른 여름날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크아! 땀범벅이 되어 찝찝한 오후에 샤워하고 맞는 에어컨 바람, 후아! 저절로 덩실덩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지 모를 만큼 상쾌합니다.

 2019년 늦여름, 태풍이 지나가던 날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이어트의 일환으로 하루 만보 이상 걷기를 실천하고 있었기에 태풍이 와도 걸어야만 했습니다. 제 자신과의 약속이었죠. 그래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습니다. 현관에서부터 굉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우에에에엥.' 하면서 말이죠. 살짝 겁이 났지만 그래도 나가보기로 합니다. 올림픽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올림픽 공원 산책로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연일 뉴스에서는 태풍의 위험성과 대비에 대한 경각심 보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타 지역의 피해 상황들도 속속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적 없는 숲길을 걷다 보니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들리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더군요. 바로 나뭇잎과 풀들이 바람에 싣고, 바람에 실려 추는 춤과 부르는 노랫소리였습니다. 아주 '신명'이 나게 춤추고 노래하더라구요. 태풍이 지나가니 바람의 비트가 얼마나 굉장했겠어요. 목청 껏 노래하고 머리칼을 휘날리며 댄스파티를 했더랍니다. 그 순간 생각했지요. 뉴스에서는, 사람들은 태풍이 온다고 걱정하고 싫어하는데 이 나무들은, 이 풀들은, 식물들은 이 순간만을 얼마나 기다릴까. 하염없이 곧게 선 나무도 태풍에 실려온 강한 바람에는 자신의 몸을 맡기고 신명 나게 춤을 추는데 그 한없는 기다림의 끝에 이 순간 얼마나 자유롭고 신이 날까 하구요. 살랑이는 젠틀 브리즈에도 들꽃들은, 들풀들은 춤을 추고 노래하지만 태풍의 거센 바람을 맞으며 가무를 즐기는 그날은 그야말로 파티더라구요. 클럽이 따로 없었습니다. '신명'나게 상모도 돌리고 득음할 때까지 '싸르르' 노래하더군요.

 자연이 참 신비롭다고 느꼈습니다. 사람 한 명 없는 태풍 속 산책로에서 다이어트하며 펼친 얄궂은 상상의 나래였지만 참 즐겁더라구요. 그 장면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전부 신나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람이 불편하다고 바람을 싫어하면 안 되지, 식물들은 그때만큼 신이 나는 날도 없을 텐데. 내가 불편하다고 비 오는 날을 싫어하면 안 되지, 내가 콜라 마시듯 식물들은 그때만큼 청량한 날이 또 언제 있겠어. 마치 얼음 가득 넣은 청포도 에이드 같은 맛일까? 하며 혼자 키득.

 산책이 거의 끝날 무렵부터 거세게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사이다든 콜라든, 레모네이드든 청포도 에이드든 시원하게 마시고 오랜만에 흠뻑 개운하게 샤워도 했겠지요. 그날을 꼭 시로 써 남겨야지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신명'났던 파티의 순간을요. 제목은 'Club of St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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