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추억'이라는 꽃말
오늘은 글을 좀 짧게 써보려고 해요. 매번 의식하고 노력은 하는데 쓰다 보면 길어지네요. 독자분들께서 담백하게 읽으실 수 있으면서도 짧은 글 안에 향수와 공감, 그리고 웃음을 드리는 글을 쓰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오늘의 꽃은 '빈카'입니다. 이름이 생소하지만 참 예뻐요. 우리나라에서는 일일초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빈카'의 꽃말은 '즐거운 추억',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빈카가 밝은 색의 꽃을 많이 피우는데 그 모습이 즐거운 여름을 만끽했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일부 게르만족들은 빈카가 독사에 물린 상처를 낫게 한다고 믿었다고 해요. 이탈리아에서는 죽은 아이의 장례를 지낼 때 이 꽃으로 장식을 하는데 '죽음의 꽃'이라고 불리며 반대로 영생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묘하게 꽃말과 닮은 부분이 있네요. 아이가 그 시절 즐겁고 아름답던 추억을 가지고 너무 슬프지는 않게 떠나는 길을 배웅하는 의미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추억을 마음의 식량 삼아 외롭지 않도록 말이죠.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면 제 인생에서 꼭 세 지점이 떠오릅니다. 첫 번째 지점은 대학시절입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재미나고 우스웠을까요. 정말 바람에 굴러가는 낙엽만 보고도 까르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은 이제 다 애기 엄마가 되고 여전히 저와 함께 다니던 직장에 있지만 자주 연락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항상 배불러요. 그 친구들과의 추억을 생각하면요. 그 시절 찬란히 빛났던 우리였습니다.
두 번째 지점은 오래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본격적으로 유흥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스물아홉 무렵입니다. 바람과 나뭇잎을 보며 해맑게 웃진 않았지만 좀 더 농도 짙고 다양한 인생의 재미들을 맛보던 시기였습니다. 왜냐. 돈을 벌었으니까요. 직장인이었던 당시 누리던 재미는 대학생 때와는 또 다른 질감의 것들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쭉 재미있었어요. 서른 살에 처음 클럽을 가 본 이후로 한 2년간은 정말 원 없이, 는 아니고 꽤 많이 춤추러 다녔던 것 같네요. 의외로 유교 걸이었던 제가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줄 몰랐습니다.
세 번째 지점은 서른 하나 즈음에 서울에 정착하고 마음에 꼭 맞는 친구들과 다시금 대학생 때처럼 꺄르르 웃으며 지냈던 4~5년의 시간입니다. 2020년 초반 정도까지 참 많이 웃으며 지냈네요. 원래 나이가 들수록 똑같은 것에도 덜 웃게 되잖아요.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요. 그래서 어릴 때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나는 건데, 그때는 마치 운명의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이렇게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너무나 사회인이 되어서 만난 친구들과 순수한 웃음을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충만하고 기뻤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친구들과 전혀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제게는 아름답고 즐거웠던 추억으로 자리해있습니다. 휴대폰 사진첩에도 여전히 그 친구들과 함께 했던 여행의 흔적들과 웃음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어요. 제게 추억을 선물해준 모든 인연이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끝이 났든 모두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네 번째 지점이 올까요? 크게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2년 전부터 몸이 좀 아팠는데 그 어두운 터널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저는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약간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슬프고 막연하고 우울하다가 지금의 저는 평온합니다. 때때로 다운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평온해요. 지금의 잔잔함이 좋습니다. 즐거움이 고플 땐 추억을 꺼내봅니다. 그리고 웃어요.
지금 내가 많이 즐겁지 않다고 해서 슬프지 않습니다. 이 또한 나이 듦과도 관계가 있겠지요. 어른들이 그러시잖아요. "별로 재미도 없고 그래~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이제 약간은 그 이유와 의미를 알 것도 같습니다. 정말 재미가 없어요. 다 해봤고 익숙한 것들이라서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상태가 싫지 않습니다. 사는 게 다 똑같고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어도 괜찮아요. 편안하고 안정감이 듭니다. 지금의 저는 그 안정감이 더 좋은 시기인 것 같아요. 약간은 무료하고 픽 하고 싱거운 웃음을 짓다가도 그냥 그런대로 괜찮은 하루들이, 그런 오늘이 오늘도 똑같이 지나갑니다. 이 또한 나중에 돌이켜 보면 '즐거운 추억'이 되어 있을까요? 호호. 더 나이 들어 더~ 재미없어지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