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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으로 Apr 10. 2022

4월 10일의 꽃, 빈카

'즐거운 추억'이라는 꽃말

 오늘은 글을  짧게 써보려고 해요. 매번 의식하고 노력은 하는데 쓰다 보면 길어지네요. 독자분들께서 담백하게 읽으실  있으면서도 짧은  안에 향수와 공감, 그리고 웃음을 드리는 글을 쓰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오늘의 꽃은 '빈카'입니다. 이름이 생소하지만  예뻐요. 우리나라에서는 일일초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빈카' 꽃말은 '즐거운 추억',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빈카가 밝은 색의 꽃을 많이 피우는데  모습이 즐거운 여름을 만끽했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일부 게르만족들은 빈카가 독사에 물린 상처를 낫게 한다고 믿었다고 해요. 이탈리아에서는 죽은 아이의 장례를 지낼   꽃으로 장식을 하는데 '죽음의 '이라고 불리며 반대로 영생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 흰 빛깔의 빈카 >

 묘하게 꽃말과 닮은 부분이 있네요. 아이가 그 시절 즐겁고 아름답던 추억을 가지고 너무 슬프지는 않게 떠나는 길을 배웅하는 의미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추억을 마음의 식량 삼아 외롭지 않도록 말이죠.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면 제 인생에서 꼭 세 지점이 떠오릅니다. 첫 번째 지점은 대학시절입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재미나고 우스웠을까요. 정말 바람에 굴러가는 낙엽만 보고도 까르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은 이제 다 애기 엄마가 되고 여전히 저와 함께 다니던 직장에 있지만 자주 연락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항상 배불러요. 그 친구들과의 추억을 생각하면요. 그 시절 찬란히 빛났던 우리였습니다.

 두 번째 지점은 오래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본격적으로 유흥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스물아홉 무렵입니다. 바람과 나뭇잎을 보며 해맑게 웃진 않았지만 좀 더 농도 짙고 다양한 인생의 재미들을 맛보던 시기였습니다. 왜냐. 돈을 벌었으니까요. 직장인이었던 당시 누리던 재미는 대학생 때와는 또 다른 질감의 것들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쭉 재미있었어요. 서른 살에 처음 클럽을 가 본 이후로 한 2년간은 정말 원 없이, 는 아니고 꽤 많이 춤추러 다녔던 것 같네요. 의외로 유교 걸이었던 제가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줄 몰랐습니다.

 세 번째 지점은 서른 하나 즈음에 서울에 정착하고 마음에 꼭 맞는 친구들과 다시금 대학생 때처럼 꺄르르 웃으며 지냈던 4~5년의 시간입니다. 2020년 초반 정도까지 참 많이 웃으며 지냈네요. 원래 나이가 들수록 똑같은 것에도 덜 웃게 되잖아요.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요. 그래서 어릴 때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나는 건데, 그때는 마치 운명의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이렇게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너무나 사회인이 되어서 만난 친구들과 순수한 웃음을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충만하고 기뻤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친구들과 전혀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제게는 아름답고 즐거웠던 추억으로 자리해있습니다. 휴대폰 사진첩에도 여전히 그 친구들과 함께 했던 여행의 흔적들과 웃음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어요. 제게 추억을 선물해준 모든 인연이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끝이 났든 모두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네 번째 지점이 올까요? 크게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2년 전부터 몸이 좀 아팠는데 그 어두운 터널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저는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약간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슬프고 막연하고 우울하다가 지금의 저는 평온합니다. 때때로 다운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평온해요. 지금의 잔잔함이 좋습니다. 즐거움이 고플 땐 추억을 꺼내봅니다. 그리고 웃어요.

 지금 내가 많이 즐겁지 않다고 해서 슬프지 않습니다. 이 또한 나이 듦과도 관계가 있겠지요. 어른들이 그러시잖아요. "별로 재미도 없고 그래~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이제 약간은 그 이유와 의미를 알 것도 같습니다. 정말 재미가 없어요. 다 해봤고 익숙한 것들이라서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상태가 싫지 않습니다. 사는 게 다 똑같고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어도 괜찮아요. 편안하고 안정감이 듭니다. 지금의 저는 그 안정감이 더 좋은 시기인 것 같아요. 약간은 무료하고 픽 하고 싱거운 웃음을 짓다가도 그냥 그런대로 괜찮은 하루들이, 그런 오늘이 오늘도 똑같이 지나갑니다. 이 또한 나중에 돌이켜 보면 '즐거운 추억'이 되어 있을까요? 호호. 더 나이 들어 더~ 재미없어지면 말이에요.


< 분홍빛의 빈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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