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렸을 때와 죽기 전 노년기에 행복해야 진정한 행복한 삶이다. 안타깝게 우리나라는 아직 그러기에는 못 미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행복한 노년과 죽음은 보장되지 않았다. 물론 복지비의 예산이 늘어나고 우리나라의 요양원제도가 도입되어 많은 삶의 질이 향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많은 분들이 인생황혼기에서 집에서 병석에 누워서 가족도 힘들어했다. 다행스럽게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정착되어 의료의 혜택을 받고 많은 분들이 요양원 등의 복지시설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모든 복지시설이 행복한 노후를 보장한다고 광고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얼마 전 현직을 퇴직하신 엄상익변호사님의 半은 천국, 半은 지옥(부제 아름다운 꽃도 같은 종류만 모이면 질린다)은 이야기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분은 마지막 주거지로 노령의 생활을 근무를 하던 곳, 실버타운, 바닷가에 혼자 사는 방법 등 세 가지로 분류하고 우선 2년간 바다가 보이는 실버타운에서 살았다고 한다. 시설에 대해서는 만족했다고 한다. 바다가 보이고 편의시설을 갖추었으면서도 비용이 저렴했다고 한다. 직원들도 친절했으나 정작 이웃인 노인과의 소통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일본 일흔일곱 살의 히라노 유우 씨가 실버타운에 거주하며 쓴 글을 인용했다. 핵심 내용은 이랬다. 나는 럭셔리 실버타운을 보고 반했다. 바다가 보이는 22층 건물이었다. 나는 첫 일 년은 마치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점점 일상의 무게에 짓눌렸다. 내가 보는 주위 사람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었다. 나는 다른 노인들과 지적인 대화를 기대했지만 착각이었다. 대부분이 잘된 자식이나 재산 그리고 왕년의 전직을 자랑했다. 그들의 천박함에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유명 셰프가 만든 음식을 매일 먹었지만 질려버렸다. 나는 다음으로 지역 커뮤니티에 눈을 돌려보았다. 그러나 지역 주민은 고급 실버타운에 살고 있는 외지인에게 배타적이었다. 방에 틀어박혀 외롭게 지내는 날이 늘었고 우울증이 찾아왔다. 감옥살이를 하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실버타운 생활을 청산하고 도시로 유턴을 했다고 한다.
엄변호사님은 결론적으로 나이가 들어도 남녀노소가 모여있는 곳에서 사는 게 좋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건강한 노인이 비싼 돈을 내면서 노인들만 모여 사는 실버타운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인 나는 같은 칠십 대인 일본인 히라노 유우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고 실버타운을 나오게 된 동기도 비슷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겉에서 보는 실버타운은 천국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첫날 공동식당에 갔을 때 그 꿈은 바로 깨졌다. 식당의 공기는 어두운 회색이었다. 핏기가 없고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들이 침묵 속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밀차나 쌍지팡이를 짚고 오기도 하고 파킨슨 병에 걸린 노인이 혼자 힘겹게 밥을 먹고 있기도 했다. 나는 갑자기 ‘워킹 데드’라는 미국 드라마 속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좀비 사회를 그린 드라마였다. 분명 그런 느낌이었다. 나의 경우는 음식이 점점 맞지 않았다. 주방을 맡은 여성이 정성 들여 시골 집밥을 만들어 주었다. 노인들을 위해 자극적이지 않도록 국과 반찬을 만들었다. 그러나 맵고 짠 음식에 길들여져 버린 내게 그 음식들은 입에 맞지 않았다.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 식당에서 사 먹는 때가 많았다. 결론적으로 소통이 힘들고 밥을 사 먹으면 실버타운이 주상복합 아파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노인들에게 다가서면서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고 한다. 90대의 한 노인은 그곳은 저승 가는 중간의 대합실이라고 했다. 죽으려고 그곳에 들어왔다는 노인들도 여럿이었다. 그들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삶이 다르고 인생관과 가치관에 차이가 많은 노인들은 소통할 공통의 소재가 없었다. 인격 미달의 노인도 보였다. 인간은 늙어도 변하지 않았다. 노인 한 명이 흙탕물을 일으키기도 했다. 자식들은 부모가 천국에서 사는 걸로 착각하고 오지 않지만 노인들에게는 외로움의 지옥일 수 있었다. 그들은 고독과 완만한 죽음이 있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화려한 무덤 가에서 사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아름다운 꽃도 같은 종류만 모이면 질린다. 섞여 있어야 아름답다. 아무리 예쁜 꽃병이라도 시들어 버린 꽃들만 가득 꽂혀 있으면 추하고 서글프다. 실버타운에서 그런 걸 느꼈다. 이제야 그때가 좋았다는 걸 알았다. 어린 시절 손자 손녀들이 병아리 떼 같이 오글거리고 아빠 엄마들이 있고 집안 어른으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다.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세배를 하고 떡국을 나누었다. 이제 그 시절이 좋았던 걸 깨달았다고 엄변호사님은 회고했다.
사실 나도 요양원과 주간보호센터를 방문하며 음악봉사활동을 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 곳을 많이 보았다. 치매가 있으신 분들을 위하여 안전상 대부분 철문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직원이 안내하고 이어지는 철문이 닫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감정을 느끼며 심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물론 밝은 분위기의 복지시설도 많았다. 편안하고 안락한 모습의 어르신이 많았다. 그러한 것을 보면서 복지시설의 대표나 시설장의 마인드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우리 인생도 똑같은 전철을 겪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 사명감과 소명의식으로 헌신적으로 일을 해주었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노인복지시설에도 상호작용과 다양성이 필요하다! 내가 근무하는 아동발달센터에서 어린 아동들과 놀이 등의 소통을 하면서 알 수 없는 감동과 감격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어떤 형태의 복지공동체에도 다양한 인적구성과 다양성으로 어린 아이, 성인, 모든 사람들이 상호교류하고 작용하는 개방된 복지시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집에서 언제든지 요양원에도 갈 수 있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집으로 복귀하는 그러한 세상이 오면 좋겠다. 복지정책도 그러한 방향으로 수행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사회복지학자의 한사람으로서 노인복지시설의 다양성 회복하기 운동을 펼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