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각자 행복하기!
각자의 방식대로 다양하게 행복하자!
출처 : 행복(https://jm-story.tistory.com/402) 우리가 흔히 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함께 행복하자라는 것이다. 물론 함께 같은 공간이나 조직에서 가족보다도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니까 함께 행복하자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좀 더 깊숙이 들어다 보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다.
과거에는 사실 조직 전체를 하나로 보고, 의견도 하나로 통일하려고 노력하였다. 대를 위하여 소는 희생할 수도 있다는 사고관념이 팽배했었다. 약자나 소수의견은 묵살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베이비붐시대 경쟁사회에 태어난 나는 단체에 속하여 야기되는 희생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인 선택이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것들이 익숙하지고 몸에 배자 혹시 집단에서 이탈되거나 이탈하는 사람을 보면 예의 없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지금도 만약 과거의 나와 같이 다 함께 행복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직원은 자연스럽게 조직 내에서도 뒷전으로 밀리고, 시대에 뒤 떨어진 사람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 행복한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관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 함께 행복하기보다는 각자 행복하기 더 중요하다. 다 함께 행복하기는 형식적 행복이고 각자 행복하기는 실질적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적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각자 행복하기가 더 행복의 실현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사람마다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고 느낌과 인지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사람마다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다. 얼마나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 우리 공무원 조직을 보더라도 들어온 나이, 경력, 계급, 성별로 나누어져 서로 다른 상황을 연출하게 한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둘째, 사람마다 느낌이나 인지하는 정도가 다르다. 개인별 성경, 취향, 가치관, 판단기준에 따라 사람마다 보고 느끼고 인지하는 것도 다르다. 느낌이나 인지하는 정도에 따라 행복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난날 나는 같은 팀이면 목표와 업무도 반드시 공유하고 슬플 때도 기쁠 때에도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하는 전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그러한 것들을 나도 모르게 함께 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한 강요는 직원들에게 특히 후배직원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고, 발령 등으로 자연스럽게 헤어게 되었을 때 관계가 어색해지는 경우가 생겼다. 그러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다 함께 행복한 조직보다는 각자 행복하기가 더 직원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과거에 융통성 없이 다 함께 행복을 획일적으로 강요했던 일들을 돌이켜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때로는 나는 전혀 악의가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변명하기도 한다.
뒤늦게나마 너무 늦었지만 퇴직하기 전에 나 나름대로 자기 성찰을 계속하면서 얻은 소중한 진리 같아 열심히 마음속으로 크게 외쳐보며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오늘도 각자 행복하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