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예 Mar 10. 2022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소년이 온다>


책을 읽으며 고통스럽다 느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어떤 장은 그 다음 장을 넘기기가 두렵기도 했고, 가슴이 답답해 주먹  쥔 손을 한참 누르고 있기도 했습니다. 눈을 감고 싶으면서도 책을 읽었습니다. 읽어야 했습니다. 알아야 할 일들이었고, 느껴야 할 고통이었습니다. 단지 한 줄의 역사로 알고 있었던, 그러나 당사자들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우리 민족의 무참하고 치욕스러운 과거입니다.




상처 입은 존재들의 심리,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그들의 영혼을 소설가의 입을 빌어 이야기합니다. 잔인스러울만치 세세하게, 정면으로.




한강의 소설을 잘 몰랐습니다. 서점의 베스트 셀러 코너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꽤 오랫동안 본 것 같았지만 집어 들지 않았습니다. 베스트 셀러에 진열된 책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저의 오래된 요상한 습성입니다. 어느 날 누군가가 작가의 다른 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한 리뷰를 한 것을 보게 되었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강의 소설을 읽어보아야겠다 막연히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작별하지 않는다> 를 읽으며 그것이 제주4.3사건을 소재로 한, 단순한 소설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고 80년 5월의 광주를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까지 홀린 듯 읽게 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죽음이 나옵니다. 너무나 고귀한 하나 하나의 생명들이, 누군가의 동생이, 오빠가, 친구가, 아들이ㅡ말도 안되는 이유로 동강나고, 처참하게 짓밟히는 장면들이 처연하게 묘사됩니다. 너무 고통스러웠을뿐 울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떤 생명도 가볍지 않다는 무거운 감각. 책을 넘길 수록 무언가가 활활 타는 듯이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전까지 내가 닿아보았던 어떤 생명체도 그들만큼 가볍지 않았다. _<작별하지 않는다>, p.109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_<작별하지 않는다>, p.134






그러나 홀린듯 연달아 읽은 <소년이 온다>에서 소년(동호)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독백에서는 참지 못하고 눈물샘이 줄줄 터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끄나, 젖먹이 적에 너는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는디. 향긋한 노란 똥을 베 기저귀에 누었는디. 어린 짐승같이 네 발로 기어댕기고 아무거나 입 속에 집어넣었는디, 그러다 열이 나면 얼굴이 푸레지고, 경기를 함스로 시큼한 젖을 내 가슴에다 토했는디. 어쩌끄나, 젖을 뗄 적에 너는 손톱이 종이맨이로 얇아질 때까지 엄지손가락을 빨았는디. 온나, 이리 온나, 손뼉 치는 내 앞으로 한발 두발 걸음마를 떼었는디, 웃음을 물로 일곱걸음을 걸어 나헌테 안겼는디. _<소년이 온다>, p191






맞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가. 난간에 기대서서 현수막을 길게 내리고 소리 질렀다니. 내 아들을 살려내라아.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아. 정수리까지 피가 뜨거워지게 소리 질렀다이. 경찰들이 비상계단으로 올라올 때까지, 나를 들쳐메고서 입원실 침대에 던져놓을 때까지  그렇게 소리 질렀다이.  _<소년이 온다>, p190






그 사람ㅡ을 생각합니다. 법정에 서 있던 무심한 눈. 죄를 알지 못한다는 표정, 고급스러운 저택, 그를 호위하던 검고 반듯한 양복의 무사들.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그 아들들의 갖가지 비도덕한 행위에 대한 뉴스까지. 




그렇지만 또한 베스트셀러 코너에 당당히 올라있었던 이 책들을 생각합니다. 




다 잊을 뻔했던 역사를,




그렇게 다 잊고 지나는 역사를,


누군가는 죽어서도 잊지못할


억울한 원혼을  토닥여주는 소설의


힘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다행이라


위안해 봅니다. 이 세상에 '글'이라는 것이


있어서.









읽는 것이 고통인데


쓰는 것은 얼마나 더 고통이었을까요. 실제로 작가는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서 글을 쓰는 동안 악몽에 시달렸던 일을 기록합니다




더 계속할 수 없다고 느꼈다. 꿈 때문이었다. 벌떡 일어나 앉아 손으로 명치를 짚었다. 오분 가까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덜덜 턱이 떨렸다. 울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얼굴을 문지르자 손바닥이 흠뻑 젖었다. _<소년이 온다>, 에필로그 중




글을 끝내 마치지 못할 것 같았지만, 그는  종내 끝냈고 세상에 읽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그는 써 냅니다. "작가가 소재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강은 하게 만든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뒷 표지에 있었던 어떤 평론가의 말이 내게 박혔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억울한 원혼의 소리들이 그를 놔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력을 다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소설로 엮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광주 5.18로 누가 몇 명이나 죽었는지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교복 위에 총을 메야 했던, 두려움에 떨던 한 소년과 그 가족의 피 맺힌 절규를_그들의 풀지 못한 원혼의 이야기, 그들이 얼마나 무서웠고 억울했는지를_고통스럽더라도 끝까지 귀 바짝 붙여 들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우리는 진정한 반성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소설이 있는가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긍정적인 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