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당신의 목소리 (5)

by 지예

당신은 나와 함께 지내는 이 곳을 미안해 하지만 나는 이 곳이 좋습니다. 내가 태어나 처음 만난 곳. 당신과 나의 첫 보금자리. 재개발을 앞두고, 골목을 지키는 집이 몇 채 남지 않은 적막한 동네의 끝, 오래된 빌라의 반지하방.

당신이 이 집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했던 것은 단지 창문이었습니다. 그것이 북향이든, 서향이든 다 저녁에 잠깐 스쳐가는 아쉬운 빛이라 해도, 빛을 만날 수 있는 집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자라는 아이에게는 빛이 꼭 있어야 한데.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다짐처럼 자주 중얼거렸습니다. 부른 배를 뒤뚱거리며 창문이 있는 집을 구하기 위해 다녔습니다. 당신의 통장에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미용실에서 번 돈, 그리고 나를 낳기 직전까지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번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당신이 생전 처음 만들어 본 큰 돈이었습니다. 언젠가 깨끗한 집에 월세를 내지 않고 살아 보리라, 모았던 돈. 그러나 집을 구하는 비용 말고도 출산비용과 일을 못하는 동안의 최소한의 생활비도 남겨 두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집은 변두리로, 후미진 골목으로 자꾸 멀어져 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창문 하나만큼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출산용품은 미혼모를 위한 카페나 온라인 중고 시장을 통해 채웠습니다. 미혼모 복지시설에서 당신의 몇 가지 서류를 확인한 후, 당신의 키만한 신생아 선물 박스를 보내주었습니다. 박스에는 아기 배냇저고리, 기저귀, 젖병, 분유, 내복, 포대기, 아기 띠, 신발 등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많은 물건들이 들어 있었고 당신은 갑자기 용기가 생기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무료로 나누는 아기 옷들과 육아용품들을 얻기 위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이미 뚱뚱하게 부른 배를 연신 숙이며 감사인사를 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몰랐지만, 이걸로 충분하겠다 싶었지요. 찾아보면 세상의 온정이라는 것을 앞으로도 기대할 수 있겠구나. 그래, 나만 열심히 살면 되겠어! 정말 좋은 세상이다. 그지? 당신의 들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던 날이었습니다.

내가 태어나 걸을 수만 있게 되면 어린이집을 보내고 다시 일할 계획이었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열심히 일 해야지. 아끼고 절약하며, 아기와 함께 둘이서 재미나게 살아야지. 혼자일 때보다 한 생명이 함께 있음이 당신이 품은 무게에도 불구하고 벅찬 날들이었습니다.


그런 날이 정말 있었습니다.


이제 내가 태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날. 당신은 마지막 일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작은 행운목 2개를 사와 바나나 우유 통을 씻어 그곳에 심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태명을 똑같이 붙여 주었습니다. 행복이. 창문으로 들어온 한 줄기 먼지 섞인 바람이 창틀에 놓인 행복이를 가만히 쓸고 지나갔습니다. 당신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는데, 이것이 행복인지 슬픔인지는 확실치 않았습니다. 다만 아기를 낳기만 하면, 그리고 아기를 어린이집을 보내고 당신이 일을 할 수만 있게 되면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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